[시론]김영호/ 安保불안 심각하다

  • 입력 2003년 2월 16일 19시 31분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곧 새로 출범할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함께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촛불시위 이후 그동안 불편했던 양국 관계는 럼즈펠드 장관이 주한미군의 감축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한 핵 위기로 한미공조체제가 강화되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 문제가 터져 나옴으로써 국민 사이에는 안보 불안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럼즈펠드의 주한미군 감축발언▼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주한미군의 철수와 감축은 미국의 세계 및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 하에서 이뤄졌다. 1947년 6월 미 합참은 문라이즈(MOONRISE)라는 동아시아에서의 비상전쟁계획을 수립하면서 소련과의 전면전 발발시 한국은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방어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결국 미군은 완전 철수했다. 당시 미 군부의 입장을 민간 지도자들은 뒤집지 못했다. 거꾸로 한국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시키려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시도는 미 군부의 반대로 좌초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럼즈펠드 장관의 공식적 발언은 일단 미 군부 내부의 상당히 심도 깊은 논의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번 주한미군 문제는 노 당선자의 한미관계 재조정론이 논의의 빌미를 제공했고, 한미동맹의 균열로 비치고 있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6·25전쟁의 산물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달리 한미방위조약에는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국의 자동개입조항이 없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은 주한 미군을 휴전선에 배치함으로써 인계철선(trip-wire)을 만들어 전쟁 발발시 자동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닉슨독트린에 의해 미군 제7사단이 철수하고 남아 있던 미군 제2사단은 후방으로 재배치되었지만, 휴전선 근처에 배치된 주한 미군은 대북 억지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미군 병력을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고 그 과정에서 일부 병력을 감축하겠다는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을 최초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대북 억지체제는 심각한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고 북한에 오판의 기회를 줄 위험마저 크다.

만약 한미관계가 더욱 악화되어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가 현실화될 경우 주한미군 대체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7%인 우리의 국방예산은 현재보다 최소한 두 배는 증액되어야 할 것이다. 또 젊은이들의 군 복무 기간 연장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외국투자의 감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엄청날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완전한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을 유도하고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도 증대할 것이다. 이처럼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라는 안보자산은 미국보다는 우리가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주한미군 병력의 감축과 재배치는 중요한 대북 협상용 카드의 하나이다. 그 때문에 이 문제는 현재 휴전선 일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북한군 병력의 후방 이동과 연계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노 당선자와 그의 전략가들은 더 이상 한미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공개적 발언에 신중을 기하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전략과 청사진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 개선 우선노력을▼

최근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에서 보는 것처럼 이번 문제가 국가안보의 불안으로 연결될 경우 우리의 경제 사회적 안정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노 당선자가 새 정부 국정 목표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의 건설’은 한미동맹체제라는 안정적 안보구도가 유지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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