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불안해 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불안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당선자가 대답했다.
“저도 답답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잘하겠습니다.”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 경영자 신년포럼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와 한 참석자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질문자의 사연을 들어보면 더욱 흥미롭다. 그는 자신을 서울 구로공단에서 공장을 경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노 후보를 열렬히 지지했으며 그가 당선됐을 때는 너무나 기뻐 직원들에게 100만원씩 특별보너스를 주기도 한 인물이다. 그때 그 이야기가 일부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된 후 노 당선자와 그의 진영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점차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으며 얼마 전 동료 중소기업인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모두들 불안감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날 그의 발언은 한치의 가식과 과장도 없이 요즘 노 당선자 진영을 쳐다보는 국민 다수의 정서를 소박하게 반영한 듯하다.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선 때 그를 적극 지지했던 보통 시민들도 요즘 그를 쳐다보는 시선에 수심과 염려가 점차 번져가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럼 “저도 답답합니다”라는 노 당선자의 말은 가식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 역시 실제 답답할 것이다. 본인의 마음이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다들 불안해 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나름대로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고 국민 전체에게 복지가 돌아가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들려는 데 왜 다들 불안해 하는 것일까. 대통령직인수위측과 일부 방송 등이 툭하면 주장하듯이 주요 신문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구 써 대고 노 당선자측과 국민을 이간시키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군사쿠데타 정권과 급진세력의 실패 과정에 대한 연구서들이 그 원인의 하나를 사명감 과잉으로 인한 독선에서 찾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와 나의 동지들은 오직 국가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우리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될 것이다”는 식의 자만과 독선으로 인해 민중과 급격히 유리된다는 것이다. 반대와 이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단세포적인 세력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드러내는 예이기도 하다.
노 당선자의 북한 및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소신 발언이나 노사관계에 대한 발언 그리고 새로 짜여진 청와대 참모진용 등이 우려를 낳고 있다. 그의 발언은 본인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존의 질서와 사회구조를 급속히 뒤엎는 것으로 느껴져 어쩔 수 없이 불안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그의 인사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럽 일부 국가의 정부와 기업에서는 ‘안티맨’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너무 일방적인 정책이나 의사결정이 부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합리적인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인물을 선정하고 의무적으로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제도다. 노 정권과 같이 소수이면서 개혁 성향이 강한 정권일수록 조직 내에 안티맨을 두고 반대되는 계층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일방적인 방향 설정으로 인한 실패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전경련 신년 포럼에 참석했던 그 중소기업인의 발언이 진솔하게 들린다면 언론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점검해 볼 일이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 노무현 정권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동우 사회1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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