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의 한 고위간부는 지난주 현대상선에 최후통첩을 보냈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작년 9월 말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제기된 이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당시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 등 고위간부들은 금감원의 계좌추적을 요구하는 여론에 대해 “금감원이 현대상선 계좌를 추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녹음기처럼 강조했다.
여론이 부담스러웠는지 금감원은 “현대상선의 분식회계 여부는 회계감리를 통해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4000억원 대출금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현대상선에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은 거의 다섯달이 지난 이달 초였다.
그동안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벌써 잊었는지 현대상선의 자료가 불충분하자 금감원은 다시 한번 자료를 요구하면서 ‘최후통첩’이라고 통보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금감원 안팎에서는 “다섯달 동안 팔짱만 끼고 있다가 이제 와서 부산을 떠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비난이 적지 않다.
금감원의 A간부는 이에 대해 “그동안 감사원 감사와 자동차운반선 매각 등 현대상선이 너무 바쁘다고 해 기다린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감원 B간부는 “금감위원장이 당시 산업은행 총재로 현대상선 대출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금감원이 요즘 들어 분식회계를 밝히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평가가 많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감독기구 개편에다 새 금감위원장 선임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인사는 “금융계는 세상흐름에 민감한 동네”라면서 “정권이 바뀌고 수장(首長)이 바뀌는 상황이라 만일을 위해 일한 흔적이라도 남겨두겠다는 의식이 작용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금감위원장이 장관급인데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소신 있는 금융감독기관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김동원 경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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