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사건 특검부터 실시해야▼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지난 대선을 전후해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지금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는 대북 송금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왜 한푼도 주지 않았다던 대북 송금액이 2억달러, 5억달러로 늘어나고, 민간기업의 사업독점권에 대한 대가 지불을 왜 통치행위 운운하며 감싸야 했는가. 2000년 초 이미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현대그룹이 언제 수익을 낼지도 모를 대북사업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이며, 김대중 정부하에서 40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융 지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국가정보원 도청사건은 한나라당이 지어낸 거짓말인가. 이회창씨 아들들의 병역면제 의혹 제기는 민주당의 정치공작인가.
한국민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모든 의혹들은 아직까지 하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검찰은 정치권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적당히 타협해 넘어가고 싶어하는 눈치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깊어만 간다.
바야흐로 정치개혁의 시대이다. 선거가 끝나면 으레 승자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을 만들어야 하고, 패자는 책임 추궁을 위해 정치개혁을 부르짖는다. 어떻든 소중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이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거짓말 정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국민을 기만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책임정치를 실종시키는 거짓말 정치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거짓말 정치를 종식시킬 것인가. 첫째, 이미 제기돼 있는 국민적 의혹사건들에 대한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김대중 정부와 민주당의 의혹사건, 그리고 민주당이 제기한 이회창씨 관련 의혹사건들을 모두 특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서로의 의혹사건을 함께 덮는 식의 정치적 타협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둘째, 국회의 국정조사권과 청문회 제도가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기능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강화돼야 한다. 여야간 대립은 종종 절차적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통해 국회의 실질적 권한 행사를 가로막았고, 거짓 증언을 한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처벌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고, 특검제 실시를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며, 위증죄에 대한 처벌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셋째, 사법부의 실질적 독립이 실현되어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하고 엄격한 사법권 행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인치가 법치를 가로막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넷째, 국민도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철저하게 심판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단체들도 국민의 알 권리를 철저하게 지켜주어야 한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돼야 한다.
▼국회발언 위증땐 처벌 쉽게▼
최근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국회에서의 정치적 타결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언제 정치의 중심에 서서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던가. 증인 채택이나 위증 논란과 같은 절차적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이 문제를 대충 마무리짓거나, 서로의 의혹을 덮어주는 정치적 타협으로 끝내려는 의도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특검을 실시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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