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권희의 월가리포트]"전쟁지연은 호재"…'평화 랠리'반짝

  • 입력 2003년 2월 19일 18시 48분


‘대통령의 날’ 공휴일인 18일 뉴욕 일대에는 60㎝가량의 폭설이 내렸다. 뉴욕시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공항은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4년 만에 두 번째로 밤 공연을 취소했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에 대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코멘트가 압축적이다. “매우 아름답고, 매우 불편하고,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 뉴욕시는 이번 눈을 치우는 데 1700만달러, 워싱턴은 2000만∼3000만달러가 들었다고 추정된다.

큰길은 소통에 지장이 없을 만큼 눈이 치워졌지만 맨해튼의 중심가조차 승용차가 다니기 어려운 곳이 적지 않았다. 그런 18일, 뉴욕 주가는 상승세였다. 나스닥종합지수는 무려 2.78% 올랐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1.67% 올라 8,000선을 회복했다. 폭설에 갇혀 출근하지 못한 거래원들이 적지 않아서 이날 거래량은 적은 편이었다.

월가에선 이날 상승세를 ‘평화의 랠리’라고 불렀다. 유럽연합(EU) 14개국 정상들이 무기 사찰단에 시간을 더 주고 이라크는 유엔에 협조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내놓는 등 즉각적인 전쟁에 대한 반대 여건이 조성된 결과였다. 그동안 임박한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주도의 이라크 공격이 최소한 2주 이상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투자자들은 판단한 것이다. 한 시장전략가는 “전쟁이 늦춰진다는 것이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바닥이라고 판단해 그동안 많이 떨어진 주식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붙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시장분석가들은 전쟁이든 외교적이든 이라크와 미국의 갈등이 풀린 이후를 내다보고 기술주 같은 성장주들에 ‘베팅’을 하는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들은 “평화는 이따금 랠리를 이끌지만 이럴 때는 펀더멘털로 돌아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전운이 아주 걷혀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날의 상승세를 저가 매수세에 따른 기술적인 반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강하다.

어쨌든 미국 증시가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전쟁 분위기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상승세를 보였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뉴스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장세다. 이럴 때는 “뉴스를 보지말고 주가를 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요즘 같으면 ‘전쟁에 신경 쓰지 말라’는 표현일 수도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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