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죽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온다. 가족끼리도 반목하는 때가 많은 세상이지만 죽음 앞에서 가족은 서로에게 소홀했던 지난 세월을 뉘우치고 슬픔의 본능으로 오열한다. 1998년 경북 안동의 묘에서 발견된 450년 전의 편지는 문씨 성을 가진 어느 부인이 31세에 요절한 남편을 위해 써서 관 속에 넣었던 글로 오늘날에도 심금을 울린다. ‘원이 아버지에게’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죽자던 당신이 어찌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라도 당신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호소한다.
▷작고한 동화작가 정채봉의 딸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정리태는 아버지를 그리며 ‘아빠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글을 썼다. ‘아빠가 천국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휴가를 나온다면 아빠 품에 안기어 펑펑 울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노라고 꼭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엊그제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희생자들은 가족을 애타게 찾았다. 편지나 글이 아닌 휴대전화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통해. 칠흑 같은 지하공간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살려달라는 절규가 가득 찬 아수라장 속에서 이들은 가족에게 세상을 향한 마지막 구조신호를 보냈다.
▷이들은 유독가스가 끊임없이 목을 조여오는 가운데 말소리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끝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기력이 다하는 순간 안간힘으로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다. 거의 본능적인 ‘마지막 인사’였을 것이다. 사람은 죽지만 기억은 남는다고 했다. 이들의 허망한 죽음에 우리는 무엇으로 답할 것인가. 또 그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고를 최소화하지 못하고 이들을 빨리 위기에서 구하지 못한 후진적인 사회시스템이 두고두고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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