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 참사 직후에도 ‘if only’증후군으로 사람들은 많이도 울었다. 9월 11일 아침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고 굿바이 키스도 하지 않았다는 아내는 심리치료사를 찾아 “그때 사랑한다는 말만 해 주었더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빌딩에 도착하는 바람에 동료를 잃은 직장인은 “조금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하며 눈물을 삼켰다. 미국의 ‘정신적 쇼크 스트레스 연구를 위한 국제협회’ 설립자인 야엘 다니엘리 박사는 “이성적으로 보면 예견할 수 없고 사전에 통제할 수도 없었던 사고인데도 생존자들은 자신이 달리 행동했더라면 희생자가 없었을 것이라는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법”이라고 했다.
▷‘if only’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전문가들은 ‘의미 찾기’를 든다.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공할 원폭 피해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데서 의미를 발견하고 고통을 이겨낸 것이 한 예다. 히로시마 생존자들을 연구한 하버드대 정신과 의사 로버트 리프턴 박사는 “그들은 원폭의 위험성을 널리 알림으로써 죄 없이 겪었던 개인의 아픔을 보다 큰 인류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의 9·11 참사는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를 지닌 테러리스트들에게 당한 공격이었지만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는 다르다. 화재 직후 지하철공사가 즉각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1080호 전동차 기관사가 즉시 전동차 문만 열었더라면, 사회 안전시스템이 확실히 마련됐더라면 무고한 인명은 다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if only’의 아픔은 유족들의 몫이라고 치자. 그러나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하철공사는, 그리고 정부는 ‘if only’를 외칠 자격이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통같은 대책을 세우는 것이 대구의 억울한 희생으로부터 ‘의미’를 찾는 길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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