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나 사회, 개별적인 집단, 각종 시설물 등도 마찬가지다.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경보음이 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직원들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관련 전문가가 위기의 징후를 찾아내 경보를 울릴 수도 있다. 1912년 4월, 2228명의 승객을 싣고 항해하다 침몰, 1523명이 죽은 타이태닉호 대참사도 그랬다. 전문가들은 배가 출발하기 전 예정항로에 빙하가 출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선박회사는 선체 하부를 어떤 충돌에도 견딜 수 있는 초강력 강철로 만들었고, 그것도 16개 방수구역으로 설계해 아무 문제가 없다며 항해를 고집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기 전 국내외에서 잇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 경고가 있었지만 당국이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 걱정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 것도 유사한 실책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도 경보음만 제대로 챙겼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화재 발생 직후 대구지하철 기계설비사령실 상황판에는 화재 발생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고 비상벨이 울렸다. 그러나 근무자들은 통상 일어나는 오작동(誤作動)이라고 무시하는 바람에 조치가 늦어졌고 결국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졌다. 다리나 건물이 무너지고 대형 교통사고가 계속되는 ‘사고공화국’의 그늘에는 이처럼 습관적으로 경보음에 둔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이 숨어 있다.
▷오늘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 앞으로 언제 어떤 경보음이 나올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 비단 대형 사고만 말하는 게 아니다. 국정운영과정에서 전문가나 언론 등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일종의 경보음이다. 그런 경고들을 소중히 여기면 당연히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다.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병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예방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 운영도 예외일 수 없다. 개혁이든 국정이든 위기가 오지 않도록 대비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노무현 정부의 5년 과제가 그것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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