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문화의 나라 만들기를▼
필자는 새 대통령이 지역주의와 기득권층의 전횡을 약화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자주외교를 펼쳐주기를 기대한다. 보수층이 보이는 ‘급진주의’에 대한 우려는 근거 없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개혁정신이 알차지 않은 듯한 것이 걱정이다. 또 ‘민중주의’의 좌충우돌에 대한 우려도 없지는 않으나, 이 또한 보수구조의 완강함을 보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새 대통령, 새 정부의 정책 과제나 행동 양식에 대해 미리 쓴 소리를 해 두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것 같다. 필자는 지난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0대 국정과제라는 것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이 과제들은 많은 국민이 원하던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내용들을 담고 있어 얼핏 보아 이상적인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통일’에 대한 얘기가 없고 ‘문화’에 대한 말도 없다. 근본적으로 새 정부는 그 많은 개혁 담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혁과 통합을 지향한다는 새 정부가 민족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실망스럽다. ‘국정과제’에서처럼 동북아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과연 우리의 국가적 민족적 비전이 충분한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강조하지만 이는 국정과제나 목표라기보다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일 뿐이다.
또 새 정부나 대통령에게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어 보인다. 인수위나 새 정부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문화국가의 성숙에 대해 성찰할 사람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예술이나 문화 ‘상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하게 국가와 사회의 정신적 품격과 국민적 소양을 말한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막을 사회 안전구조를 일컬으며, 맹목적 일류병과 과외병의 집단광기에서 깨어날 정신적 성숙을 말한다.
북한이나 미국에 관한 대통령의 생각에 필자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또한 모순된 측면들이 없지 않다.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삼고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는’ 관계를 정착하겠다는 의지는 환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수위가 제시한 각종 국정과제들을 미국의 보수적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과 상담하라고 지시한 당선자 시절의 행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국가경영의 기본 틀을 제시하면서 이를 자국 이익이 우선인 외국 기관에 평가를 맡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갈등과 혼란의 5년’ 이제 그만▼
새 정부는 개혁 철학을 다시 점검해 보기 바란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 주변의 개혁적인 인사들마저 세계화론이나 개발론에 뿌리박고 있는 것은 한 차원 높은 개혁의 담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통상국가 지향에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통일 문화 국가의 건설’을 국가 목표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숱한 모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숱한 모순들의 거의 모두가 일방적인 통상국가 지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개혁의 이론과 실제에서 튀는 ‘젊은’ 아이디어에 휩쓸리지 말고 멀리 길게 볼 수 있는 철학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그를 지지하지 않은 보수세력까지도 껴안으면서 개혁을 실천할 힘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정부 또한 갈등과 혼란, 시행착오로 5년을 지새울지 모를 일이다.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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