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구참사 바른 수습이 개혁이다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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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로 혈육을 잃은 유족의 심정을 아는가. 현장에서 거둔 잔해더미 속에서 희생자들의 손발 등 신체 일부와 유류품이 나왔다는 것은 방화 그 자체보다 더 어이없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대구지하철공사측이 사고 녹취록을 조작 은폐한 것도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지만, 사고 수습 책임을 맡은 대구시와 지하철공사 경찰 등이 일말의 윤리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이처럼 시신을 욕보이는 죄를 저지를 수는 없다.

그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거늘, 시신마저 쓰레기처럼 취급했다니 분노한 유족들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서둘러 물청소까지 할 만큼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싶었다 해도, 우리 사회 총체적 부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떠난 희생양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2001년 9월11일 발생한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 참사의 경우 현장관계자들이 첨단감식장비와 전문인력을 동원해 이듬해 5월31일까지 한 톨 한 톨 흙을 헤집어가며 시신을 수습하고 현장을 정리했다. 당국은 작업을 마치던 날 시신 한 부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빈 관을 들고 엄숙하게 현장을 떠나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유족들을 위무하기도 했다.

개혁은 멀리 있지 않다. 희생자에게 조문하는 심정으로 훼손된 시신을 찾고 신원을 밝혀내 유족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명경시풍조와 안전불감증을 치유하는 길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 경위와 원인, 구조적 문제점을 규명하는 것이 개혁의 첫걸음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직접 수습에 나서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이런 후진적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철두철미한 구난체계와 제도를 갖추고 낙하산 인사,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 등을 뿌리뽑는 것이 제대로 된 개혁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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