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리다운 총리를 기대한다

  • 입력 2003년 2월 26일 18시 05분


노무현 대통령이 새 정부 첫 국무총리로 일찌감치 고건(高建)씨를 택한 것이나,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임명동의안 통과를 용인한 것엔 공통점 하나가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개혁이미지에 고 총리의 안정이미지를 보완하고 싶었을 것이고, 한나라당은 그나마 고 총리가 개혁의 일탈이나 과속에 제동을 걸어주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대북 비밀송금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에 대한 정치권의 당략과 흥정 때문에 인준에 엉뚱한 난항을 겪긴 했지만, 고 총리의 시대적 역할은 분명하다. 개혁이 편향되지 않도록 항로를 통제하는 관제사여야 하고, 개혁이 조급해지거나 거칠어지지 않도록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는 조율사여야 한다. 개혁의 효율과 생산성을 꼼꼼히 따지는 감리사여야 하고, 개혁의 변질이나 오염을 막는 파수꾼이어야 한다.

고 총리는 또 아직은 나랏일이 생소한 젊은 개혁파들의 국정길잡이가 돼야 한다. 동시에 개혁의 오류에 대해서는 당당히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내부감시자가 돼야 한다. 개혁의 안정감과 균형감을 유지함으로써 불안을 씻고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고 총리의 존재이유가 있다.

이는 바로 ‘총리다운 총리’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리다운 총리란 대통령의 포괄적 보좌기관이자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 헌법상의 권한과 지위가 명실상부하게 보장되는 총리를 말한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장식적 보좌기관에 그쳤던 의전총리 대독총리 관행에서 이젠 정말 벗어나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한 ‘책임총리제’는 대통령과 내각이 권력을 분점하는 분권형대통령제의 전 단계로, 보다 전향적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약속한 대로 지키기만 하면 된다. 관건은 노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이 힘을 나눠주지 않는 한 총리의 입지는 극히 좁기 때문이다. 당장 고 총리가 조각과정에서 장관임명제청권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행사하느냐가 책임총리제의 실현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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