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취임식날, 대구의 기상도는 이렇게 흐리고 어두웠다. 시내 음반 가게에서는 조용한 클래식을 틀었고 상점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검은 리본을 붙여 놓았다. 국화꽃을 파는 꽃집 앞에만 사람들로 붐빈 반면, ‘당분간 영업하지 않습니다’라고 붙여놓은 노래방 술집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대구는 19일 일찌감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일주일이 지난 26일까지 사망자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을 정도로 사후수습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망자가 2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돼 ‘삼풍 사건’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낸 국가적 재난으로 기록됐지만 정부의 실질적 지원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대구시측은 “20일 건교부에 복구 및 방재시스템을 위한 정부의 출자를 공식적으로 신청했으나 건교부에선 전국의 지하철망을 모두 점검한 후 출자여부를 통보하겠다고 했으며, 이후엔 진전된 상황이 없다”며 한 발 물러나 있다.
시와 경찰 당국은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고 서둘러 복구에 나서 유골과 잔해를 훼손했다는 유족들의 분노에 몸둘 바를 모르고 있다. 사고현장 복구는 공교롭게도 20일 오전 당시 노 대통령 당선자의 현장 방문을 앞두고 전날 밤과 새벽에 긴급히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의 허탈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노 대통령은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 ‘수습과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언급했다. 대구 시민은 이제 더 이상 ‘검토’나 ‘만전을 기하는’ 상황보다는 각론(各論)적이며 실천적인 대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대선 이후 감지됐던 대구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와 상실감이 지하철 참사를 맞아 한층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조인직 사회1부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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