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59…1933년 6월 8일(4)

  • 입력 2003년 3월 5일 18시 55분


“아마 9월 말에 사형 판결 나고, 열흘 뒤에 집행됐다”

“궁내대신이 탄 마차에 엄지손가락만한 흠집을 서너 군데 낸 거, 그뿐 아이가? 아이고 불쌍해라”

재승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용조용 얘기했다.

“천황이 다 뭐꼬. 천황도 같은 밥 먹고 같은 똥 쌀 낀데”

“천황이 어데 이런 밥 먹겠노” 완주가 방귀 같은 소리를 내며 트림을 했다.

“먹는 밥은 달라도 똥 냄새는 다 난다!”

“아이고, 소리치지 마라. 왜놈이 들으면 불경죄로 끌리간다”

“일본 사람도 조선 사람도 똑같은 천황의 자식 아닌가” 아까부터 내내 고개 숙이고 있던 기하가 난데없는 일본말로 얘기하자, 만식은 놀라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천황의 자슥 아이다” 만식은 물이라도 마시고 있는 것처럼 오르내리는 친구의 목울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다…그런데…그냥…나는 같다고 얘기하면서…달리 취급하는 쪽은 저거 일본 사람들이라고…” 거의 움직임이 없는 입술 사이로 뜨거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라믄, 만약 똑같이 취급해 주면 천황의 자슥이 되는 기가?”

“…그런 일이 우째 있을 수 있겠노. 일본 사람들은 조선 사람하고 지나(支那)사람을 깔보고 있다…” 기하는 친구의 시선을 한껏 견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져 강물로 시선을 던졌다.

삼랑진에서 온 배시중(裴始重)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의 황제를 상노로 삼고

일본의 황후를 계집종 삼아

부리고 만다던 석우로(昔于老)의 맹서

우리들은 모범으로 해야 되겠다

노적(老賊) 이토 히로부미를 노령(露領)서 습격

삼발삼중으로 쏘아서 죽이고

대한만세 부르짖은 안중근의 의기

우리들은 모범으로 해야 되겠다①

“그만해라, 그만해!”

“쪽바리들은 우리말 모른다”

“우리말은 몰라도 이토 히로부미하고 안중근은 안다”

① 창가 ‘영웅의 모범’ 2, 7절-송민호 ‘일제하의 문학운동사’ 중에서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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