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도청의혹’ 선거前과 선거後

  • 입력 2003년 3월 5일 21시 02분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가정보원 도청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벽’에 막혀 있다. 여야 의원들이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 검찰의 소환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대선 직후 수사에 착수해 휴대전화 도청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거쳐 국정원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와 현장검증 등 관련 수사를 한 달여 전에 마쳤다. 따라서 정치인 조사만 마치면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검찰은 설명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련된 정치인들이 검찰 소환에 계속 불응하면서 검찰 수사는 한 달째 답보 상태다.

검찰은 1월 초부터 최근까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김영일(金榮馹) 이부영(李富榮) 의원과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이강래(李康來) 의원 등에게 검찰에 나와 줄 것을 무려 4, 5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도 검찰에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 안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입을 떼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의 소환 불응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구인장을 발부 받아 강제구인에 나서는 등 조치를 취했겠지만 상대가 현역 의원들이라 골머리만 싸매고 있는 것. 그래서 고소 고발사건의 통상 처리기간(3개월)을 이미 넘긴 상황에서도 이들이 소환에 응해 줄 때까지만 목이 빠져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제는 이들 의원이 모두 대선 전에는 검찰에 “왜 빨리 수사하지 않느냐”며 ‘즉각 수사’를 촉구했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 놓고 대선이 끝나자 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를 돌변해 버린 셈이다.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은 단순히 정치공방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이 정치인과 국민을 상대로 도청을 했다면 이는 대선이 끝났다고 그냥 넘겨서는 결코 안 된다. 검찰이 반드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관련 의원들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차원이 아니라 진실에 목말라 하는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진상 규명에 협조를 해야 한다.

하종대기자 사회1부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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