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진눈깨비가 흩날린 6일 오전 태릉선수촌 내 육상 트랙.
유도 여자국가대표선수들이 매서운 바람을 뚫고 트랙을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트랙을 돈 지 불과 1시간여 만에 선수들의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지더니 곧 몸을 흐느적거렸다. 운동으로 단련된 ‘철녀’들이 설마 이 정도 훈련에 맥을 못 출까.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힘들어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손목에 찬 쇳가루주머니(짐 밴드) 때문. 500g의 쇳가루를 채운 밴드를 양 손목에 차고 뛰었으니 오죽했을까.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이 밴드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직접 활용하기는 여자 유도가 처음.
“팔이 천근 만근이에요.” “누가 내 팔 좀 책임져줘요.”
선수들은 달리면서 쉴 새 없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훈련을 지켜보던 김도준 대표팀감독(용인대 교수)은 더 지독하다. “아직 두 바퀴 남았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선수들을 매정하게 내몬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노 골드’에 그치며 추락했던 여자유도가 불과 2년여 만에 중흥의 기치를 높이 들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지옥훈련의 결과.
시드니올림픽 직후 여자유도는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까지 전면 물갈이됐다. 정성숙 조민선 등 쟁쟁한 선수들이 한꺼번에 은퇴한 자리를 무명의 신인들이 채운 것. 역대 최약체 대표팀으로 꼽힐 만했다.
그러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보자”며 고통의 훈련을 자청했고, 그 땀의 대가는 값졌다. 400m 트랙을 왕복하는 인터벌훈련 기록이 남자 선수들 못지않게 앞당겨졌다. 또한 1년 전부터 쇳가루주머니를 손목에 차기 시작한 뒤 근력은 물론 기술까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부산아시아경기 금메달 이후 최근 유럽전지훈련에서 2관왕(오스트리아, 독일 오픈)에 오른 조수희(78㎏급·용인대)는 “처음에는 쇳가루주머니가 너무 거추장스러워 가끔 몰래 빼고 뛰기도 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상체근육운동에 큰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중장거리 육상선수 출신으로 하체에 비해 상체근육이 부족했던 배은혜(70㎏급·용인대·2003 오스트리아오픈 금)도 “순발력이 좋아졌고 힘이 뒷받침되니 기술을 익히기도 훨씬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유럽전지훈련 중 참가한 4개 오픈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은 4차례 연장전에서 모두 승리하는 등 체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만큼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의 두 배인 4개의 금메달을 따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처음 맡았을 때만 해도 세계무대에 내세울 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4, 5명의 선수가 금메달 가능권에 들어 있습니다. 9월 오사카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김 감독의 장담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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