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가 들어앉은 여의도 쌍둥이빌딩 26층에는 최근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리서치센터장과 애널리스트들의 개별 연봉협상이 진행됐기 때문.
“잠깐 사무실로 들어 오라”는 센터장의 전화에 누군가가 일어서면 나머지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한 애널리스트는 “성적 순서대로 면담이 진행된다는 소문이 퍼져 다음 순서가 누구인지도 관심사였다”고 전했다.
고용 재계약기간인 3월에 들어서면서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연봉이 삭감되거나 아예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실제로 상당수 중소형 증권사들은 이미 구조조정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흔들리는 증권가의 꽃=증시가 장기 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자리를 흔드는 가장 큰 이유다. 주가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새로 투자할 기업을 찾겠다며 기업 보고서를 들여다보는 투자자가 줄어드는 것.
한 애널리스트는 “매수 추천할 종목도 찾기 어려운 데다 보고서를 써도 투자의견이 대부분 중립이나 하향 조정이다 보니 기업정보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다”고 말했다.
이원기 메릴린치증권 전무도 “공정공시제도가 시행된 이후 애널리스트들이 차별화된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돼 입지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의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도 큰 원인. 20개 증권사의 작년 4∼12월 중 순이익은 평균 72.25%나 급감했다. 부국 동부 신흥 한화증권 등 7개 중소형 증권사는 적자로 돌아섰다. 증권사가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우선 순위에 오르는 것이 리서치센터. 증권사들이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 분야부터 몸집을 줄여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리서치센터를 키워오던 대형 증권사들조차 인원 감축을 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증권가 분위기는 더 뒤숭숭하다. 삼성증권은 최대 5명까지 인원을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증권사 역시 애널리스트 수를 줄이거나 연봉을 삭감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 굿모닝신한증권은 최근 5명을 감원했다. 교보 한화 메리츠 동원증권도 구조조정에 착수할 움직임이다. 메릴린치증권은 애널리스트 2명이 그만뒀지만 당분간 충원하지 않을 계획.
현대증권 오성진 스몰캡팀장은 “유능한 애널리스트를 영입하는 과정의 인원 교체로 볼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리서치센터들이 축소되는 움직임”이라며 “애널리스트의 ‘좋은 시절’은 갔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의 몸값은 지금이 꼭지점?=수억원대로 치솟은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에 대해서도 논란이 한창이다.
‘헤드’로 불리는 리서치센터장들은 5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면 2억5000만원 이상, 시니어급은 1억원 안팎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영업직원들과 비슷했던 이들의 ‘몸값’이 치솟기 시작한 것은 증시가 활황이었던 2000년. 여기에 리서치본부를 강화하려는 증권사간의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까지 붙어 연봉은 더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요즘 증권사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저렇게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몸값은 지금이 최고점”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최근 압구정동 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신영증권 장득수 전 리서치센터장은 “회사의 영향력을 높여줄 수 있는 ‘스타’ 애널리스트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아도 괜찮지만 전반적인 연봉 수준에는 거품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차별화와 변신이 살 길=증권업계에서는 앞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애널리스트와 그렇지 못한 애널리스트 사이의 연봉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옥석 가리기’를 통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
또 증권사들이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영역에 비중을 두기 시작한 만큼 애널리스트의 활동영역이 바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신영증권 장 팀장은 “기존의 기업분석 담당 외에 세무, 펀드, 부동산, 금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노근환 팀장은 “증시가 살아나면 애널리스트 수가 늘어나고 대우 조건도 높아지지만 증시가 꺾이면 감원과 연봉삭감이 불가피하다”며 “증시 침체가 이어지고 자산관리 영업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상황변화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애널리스트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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