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소대헌·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

  • 입력 2003년 3월 7일 17시 54분


소대헌·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허경진 지음/290쪽/1만3000원/푸른역사

최근 조선시대사 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정치사나 사회경제사에 대한 거창한 접근보다는 이제껏 소홀히 여겼던 유물이나 기록의 다양한 편린들을 모아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복원해 보려는 시도들이다. 특히 현재까지도 일부 가문에서는 선조들의 유물과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사례가 많아서, 이런 자료의 적절한 활용은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 주는 동시에 역사가 보다 쉽게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부부의 한평생을 다룬 이 책은 이런 학계의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보다 쉽고 친절한 안내로 사대부의 삶을 복원한 책이다. 18세기를 살아간 소대헌 송요화(小大軒 宋堯和·1682∼1764)와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던 여성 문인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 1681∼1722) 부부의 생활상이,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손과 발로 뛰어 다니는” 노력 끝에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되살아났다.

‘평생도(平生圖)’중 ‘혼인’(작자 미상)
사진제공 푸른역사

은진 송씨(恩津 宋氏) 송요화는 조선 후기 산림의 영수로 활약했던 송준길(宋浚吉)의 증손이며, 부인 김씨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안동 김씨(安東 金氏) 김상용(金尙容)의 후손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혼사는 조선 후기 정치의 핵심이었던 노론 집안간의 결합이었다. 노비가 30명이나 되었다는 본문의 설명도 이 집안의 경제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송요화와 김씨 부인의 혼인에서 시작하여 부부가 살 집을 만들고 가족을 꾸려나가는 과정, 이들 부부의 하루 일과와 연중생활, 문학활동과 이들이 즐긴 놀이들, 죽음 후의 제사와 장례, 마지막으로 후손들이 호연재의 문집을 엮기까지의 과정을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보조자료들과 함께 정리하고 있다. 당시의 놀이인 쌍륙(雙六), 투호(投壺)와 소대헌 종가에만 특별히 남아 있는 상영도(觴詠圖·윷의 일종인 윤목을 던진 결과에 따라 글을 짓고 술을 마시는 놀이도구) 등을 도판으로 정리한 것이나, ‘남편이 나를 버린다면 나도 구태여 매달리지 않겠다’고 한 여걸 김씨의 당찬 모습, 집안 여성들이 즐겨 읽었던 고소설 등 흥미 있는 내용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전 송촌동에 위치한 소대헌 종가와 선비박물관을 수없이 드나들면서 발품과 손품으로 찾은 유물과 기록을 토대로 300년 전 부부의 일생을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주인공들이 사용한 물품과 서책, 편지 등을 망라한 299개의 다양한 도판들은 당시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하면서 마치 그 시대로 들어가 책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추상적으로만 떠올렸던 조선시대 사대부와 여성의 삶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지는 점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다만 책의 제목에 소대헌, 호연재라는 당호(堂號)를 사용함으로써 주인공과 시대배경이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병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shinb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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