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장교 출신으로 고교영어교사를 하던 송성문씨가 이 참고서를 쓴 것은 67년이었다. ‘학생들에게 영어의 바른 길을 제시하자’는 동기에서 썼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혔지만, 이 책으로 ‘영어의 왕도’를 찾았다는 사람 못지않게 영어에 흥미를 잃은 이도 적지 않았다.동사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타동사 자동사 불완전동사 완전동사 설명이 나오고, 동사에는 부정사를 목적어로 취하는 동사와 동명사를 목적어로 취하는 동사가 있다며 복잡한 예문이 나오는 데에 이르면 아이고 모르겠다, 책을 덮어버렸다는 패배담이 수두룩하다. 독해와 문법은 주르르 꿰지만 “시청이 어디냐”고 묻는 외국인에게 대답을 못하고는 돌아서서 가슴을 쳤던 30, 40대가 어디 하나둘이랴.
▷한 해 20만부씩 팔리던 성문종합영어의 위력은 그러나 90년대 들어 대입 본고사가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면서 예전 같지 않아졌다. 수학의 정석이 여전히 100만부 이상 나가는 데 비해 성문종합영어는 2만부 수준이다. 업계에선 수능시대와 10대의 감성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도 성문종합영어는 변할 계획이 없다. “영어의 골격은 바뀔 수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간다”는 것이 성문사의 방침이다. 이 같은 우직함 때문일까. 수능이 쉬워진 지금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성문종합영어를 본다.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간 중고교생도 방학이면 돌아와 성문종합영어 과외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문종합영어의 고집스러운 전통은 송성문씨가 30년간 우직하게 모은 문화재등 27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귀중한 전적류 문화재가 재생용으로 제지공장에서 양잿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국보급 문화재 1점을 사는 데만 집 한 채 값을 주었던 까닭에 출판사나 저자는 지금 큰부자는 못된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저자인 줄 알았으면, 그 시절 성문종합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둘 걸 그랬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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