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캐나다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젊은 시절 작가 자신의 경험이 봄바람같이 산들대는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작은 시골마을에 갓 부임해 온, 예민한 감수성과 열정을 지닌 젊은 여교사와 빈한한 이민자 가정 출신 학생들의 애정 어린 교감이 헐겁게 연결된 6편의 중단편을 관류한다.
학생들의 미숙함과 혼란을 기꺼이 이해하는 18세의 여교사는 ‘자신이 그런 시절의 상처를 이제 간신히 치유한 상태였고 겨우 청소년기의 몽상에서 벗어나 아직 성년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
학생들은 대부분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 온 아이들이다. 밑바닥 생활로 근근이 살아가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집안의 잡일을 돕기를 바란다.
등교 첫날 학교라는 낯선 세상에 두려워하는 빈센토,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형편이 못되는 잡역부의 아들 클레어, 천사 같은 노래로 모든 주변 사람을 매료시키는 닐, 글 쓰기에 몰두하는 드미트리오프 등이 와글대는 교실은 정겹고 순정하다.
초원의 변방에 자리잡은 학교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는 일견 소박하지만 외로움과 가난으로 상처 난 아이들을 치유하는 사랑은 독자의 품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시공간을 넘어서 전해오는 지혜로운 울림이 책장마다 가득 넘쳐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평을 받은 ‘찬물 속의 송어’는 외롭고 그래서 제멋대로 인 14세 소년 메데릭의 이야기.
어느 누구도 길들일 수 없던 야생의 메데릭은 애정 어린 교사를 통해 신뢰를 알게 된다. 여교사는 메데릭을 책의 세계로 안내하고 메데릭은 그에게 초원이 품은 야생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이들의 밀접한 관계는 메데릭이 품은 연정을 교사가 알게 되면서 일변한다. 주체할 수 없이 메데릭에게서 비어져 나오는 수줍은 떨림은 섬세하고 긴 여운을 남겨 그 여린 마음 한 자락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한편 악의로 가득 찬 환경에 처한 메데릭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여린 존재인지를 작가는 가슴에 사무치게 그려낸다. 난폭한 현실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러움을 잃게 되는 것은 얼마나 순식간인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캐나다 작가 가브리엘 루이(1909∼1983)는 1945년 첫 소설 ‘싸구려 행복’을 발표해 프랑스의 페미나상을 수상한다. 이후 ‘데샹보 거리’ ‘비밀의 산’ ‘알타몽의 길’ ‘휴식 없는 강’ 등의 작품을 펴냈다. 마니토바의 한 시골에서 교사생활을 한 경험과 동시대의 현실 등을 주제로 반(半)자전적인 작품을 쓴 그는 주제와 배경을 단순화하며 등장인물에 집중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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