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160㎞’ 엄정욱 빛의 속도로 큰다

  • 입력 2003년 3월 19일 17시 59분


엄정욱
SK 투수 엄정욱(22).

그의 목표는 볼넷 없는 경기를 해보는 것이다. 1m90, 90㎏의 거구에서 ‘가볍게’ 시속 150㎞가 넘는 무시무시한 공을 뿌리지만 제구력이 문제. 마운드에 서면 본인조차 어디로 공이 갈지 모를 정도다.

중앙고 시절부터 공은 빨랐지만 강속구투수가 늘 그렇듯 컨트롤이 없었다. 엄정욱은 “고교 때 벌써 145㎞를 던졌다. 팀내에서 내 공이 가장 빨랐다”고 말한다. 빠른 공에도 불구하고 유망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도 바로 들쭉날쭉한 제구력 때문.

2000년 2차 2순위로 지명돼 프로에 입문한 뒤 3년간 주무대는 2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1군경기엔 고작 9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투구이닝도 겨우 11과 3분의 2이닝. 승패 없이 평균자책 3.86의 기록만 남겼다.

그의 이름 석자가 매스컴에 알려진 건 지난해 5월11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기아전에 첫 등판한 엄정욱은 156㎞짜리 직구를 던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나가기만 하면 볼넷에 폭투를 던져 곧바로 다시 2군행. 엄정욱은 마음의 상처만 안은 채 2군으로 돌아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도 그의 들쭉날쭉한 컨트롤의 원인 중 하나였다.

“공이 빨랐다" 한화-SK의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한화 이도형이 7회말 유격수 땅볼 때 2루로 뛰다 아웃되고 있다. 대전〓연합

SK의 신임 조범현 감독은 “사실 기술적으로 별문제가 없는데 정신적인 면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정욱이가 지난해까지 하도 야단을 많이 맞다 보니 주눅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의 따뜻한 격려 속에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그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린 엄정욱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일본 오키나와 자체청백전에서 160㎞(비공식)짜리 직구를 스피드건에 찍었을 정도로 스피드는 여전하지만 이제 포수가 받지조차 못하는 공을 던지진 않는다.

최근 가진 두 차례의 시범경기 등판이 이를 증명한다. 15일 현대전에서 1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승리를 낚아낸 그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안타와 볼넷 1개씩을 내주긴 했지만 무실점으로 1이닝을 막아냈다. 최고시속은 152㎞.

15일 현대전에서 평균시속이 152㎞였던 엄정욱은 이날 한화전에선 144㎞짜리 직구를 던지는 등 스피드가 다소 줄었다. 이에 대해 그는 “오늘은 평소보다 세게 던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컨트롤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감독은 그동안 2군에서만 뛰었던 엄정욱을 올 시즌 1군에서 데리고 있을 계획.

조 감독은 “어쨌든 매력 있는 투수 아니냐. 등판 기회를 많이 줘 자신감을 심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에서 SK는 조경환이 솔로홈런을 포함해 3타수 3안타 2타점의 맹타를 휘두른 데 힘입어 3-0의 완승을 거두고 시범경기 3연승 단독선두를 질주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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