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급이 '로또 복권'으로 된 건가

  • 입력 2003년 3월 20일 18시 34분


재야 운동권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정찬용씨가 청와대 인사보좌관에 기용될 때부터 정치권에서는 그가 공무원 인사를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인사정책을 입안하고 각 부처의 인사를 검증하는 자리에 반드시 공무원 출신이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정 보좌관이 공무원 조직에 대해 이해가 깊은지도 의문이지만 인사 행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왔던 것이다.

정 보좌관이 1급 공무원 일괄 사표와 관련해 한 말은 재야에서 공무원을 바라보던 그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1급의 운명을 로또복권에 비유한 표현은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다. 1급들이 모두 운이 좋거나 줄을 잘 서 그 자리에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듭되는 정권교체에도 중도 하차하지 않고 공직의 정점에 이른 데는 평균 이상의 경쟁력과 노력, 윤리의식이 뒷받침됐다고 봐야 한다.

법적 신분보장이 안 되는 1급을 내보내더라도 자긍심이 손상되지 않게 격식을 갖췄어야 했다. 위로는커녕 “배우자와 놀러다니라”고 비아냥거린 것은 부적절한 표현이었다. 새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공직생활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고위직에 걸맞게 품위와 책임감을 갖춘 말을 가려 쓰지 않고 ‘쓰레기통이나 뒤지라’는 식의 저급한 표현으로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 잦다.

정 보좌관의 발언은 다면평가를 통해 능력위주로 인사를 하겠다는 새 정부의 인사 원칙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일괄 사표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업적과 청렴도를 엄격하게 따져 물러나게 할 사람에게만 사표를 받아야지 일 잘해서 다시 쓸 사람까지 일단 사표를 받았다가 돌려주는 방식은 조직원 모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사람 바꾸는 것이 개혁의 완성은 아니다. 오래된 행정 노하우를 살리고 공무원 조직의 자긍심을 북돋우면서도 개혁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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