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그 길을 여행할 수 없다고 부처는 가르쳤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외롭고 고단한 생의 방랑 끝에서 ‘내가 나의 등불이 되는’ 법열을 누릴 것인가.
편집자, 사진작가, 교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등의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필 쿠지노의 진짜 직업은 ‘여행사색가’이다. 그는 생후 2주일 만에 부모에 의해 1949년형 허드슨 승용차에 태워져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수없이 많은 길들을 섭렵하며 인간과 이 세계의 참 의미를 탐구해왔다.
이제 그는 여기 ‘성스러운 여행 순례 이야기’에 이르러 여행을 ‘자기에게로의 순례’로 규정한다. 순례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는 신에게 믿음을 증명하고 가장 깊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외국인이나 나그네 혹은 사원이나 신성한 곳을 찾아가는 사람의 여행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의 더 오래된 시적 어원은 ‘들판을 가로질러’이다.
따라서 순례자란 우리가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련의 제약들을 부수고 제 존재의 중심을 찾아가는 영혼의 소유자이다.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직관을 가진 자유인이다. “알려진 곳의 경계를 넘어 마음에는 목적지를, 가슴에는 이상을 품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여행자. 그는 길 위에서 꿈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여 새로운 의식을 창조한다. 그리곤 알게 된다. 순례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여행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방법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가 집을 떠나는 것은 바로 그런 은혜로운 순간을 위해서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운명의 힘에 대항하여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기 위해,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찾기 위해.”
쿠지노는 앙코르와트, 스핑크스, 글래스턴베리 대성당, 콘월의 거석문화 유적지와 같이 거창하고 유명한 장소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셰익스피어&컴퍼니 서점, 짐 모리슨의 묘지, 첫 키스를 나눈 찻집, 어렸을 때 떠나온 고향, 전쟁 중에 폭탄을 투하했던 적지, 좋아하는 선수가 홈런을 날린 야구장처럼 소박하고 개인적인 공간 역시 순례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그는 여행을 열망, 부름, 출발, 길, 미궁, 도착, 은혜로운 선물의 일곱 개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동안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스케치 70여 점을 보여준다.
여행의 가장 좋은 친구는 안식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의 공포이다. 그래서 마호메트는 여행을 일컬어 지옥의 한 단면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날 내가 나와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들 어찌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나의 길이다. 나는 그 길을 걸어 나를 향해 아주 멀리 가고 싶다. 소포클레스가 그랬듯 신비를 본 사람은 세 배로 행복하고, 호머가 그랬듯 어떤 사람도 그의 운명보다 위대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두 번 죽는지도 몰라. 한 번은 우리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고 또 한 번은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야.” 이 책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
이응준 소설가 totolemon@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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