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 하면 프랑스 궁정사회가 떠오른다.
명실공히 절대군주제를 실현한 루이 14세 때 와서 인간은 좀 더 고양된 인간관계의 양태를 독특한 ‘에티켓’ 문화로 정립했다. 그것은 곧 프랑스를 넘어 독일 영국 스페인으로, 또 시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사적인’ 남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기에서 그 표현의 사회적인 연원이 궁정사회에 있음을 알게 된다. (…) 조롱이나 경멸, 특권의 상실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체면과 동작, 말하자면 궁정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유별성과 차별성 특수성을 점점 더 강조하는 궁정사회의 변동하는 규범에 스스로를 종속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특정한 재질의 옷을 입고 특정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또한 궁정사회에 속하는 인간들 특유의 각별한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심지어 웃음조차도 궁정예법에 의해 형성된다.”(409쪽)
엘리아스는 이 책에서 루이 14세 치하의 베르사유궁전에서 벌어졌던 궁정문화를 파헤치고 있다. 베르사유는 바로크시대의 대표적 건축양식으로도 위용을 자랑하지만 당시 웬만한 도시의 인구와 맞먹는 1만명의 대식구가 살았던 하나의 거대한 인구집합체로도 볼 수 있다.
‘절대군주’라는 개념은 마치 군주의 권력이 무제한적이었다는 인상을 주지만 왕도 자신의 권력 기회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귀족에게 기능적으로 의존했다. 즉 왕은 점차 사회적 권위와 경제적 실력을 잃어가던 무사귀족들과 방대한 행정조직 속에서 관료적 권위를 강화해가던 법복귀족들간의 경쟁관계를 교묘하게 조정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것이다.
“궁정사회에서 언쟁하다가 종종 무기를 들고 결투하는 사람들을 평화로운 교류로 끌어들이는 것은 각별히 세련된 복잡한 자기통제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많은 사회의 내부에서 각자는 서열과 권력이 다른 사람들과 늘 접촉하며 이에 상응해 자신의 처지에 알맞은 등급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궁정인들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에 준해 자신들의 표정, 말, 움직임을 정확히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420쪽)
궁정인이란 감정을 제어할 줄 알고 심사숙고와 장기적 안목, 광범위한 지식 등을 갖춘, 이른바 궁정적 합리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것은 곧 근대적 의미의 ‘에티켓’이 생겨나고 그것이 문화화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의존관계와 긴장관계가 교차하면서 자신의 권력 위치를 유지해나가는 가운데 설정되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인간을 더욱 합리적으로 문화화시킨다는 논리를 저자는 베르사유궁전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엘리아스의 ‘궁정사회’는 ‘문명화 과정’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변방’에 머물던 학자였으나 1977년 프랑크푸르트시가 수여하는 아도르노상을 받으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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