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비극적인 전쟁의 당부(當否)나 선악을 따지고만 있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 이젠 국가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이 최선인지를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次善), 그것도 어려우면 차악(次惡)이라도 택해야 한다. 전후(戰後) 세계질서가 요동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파고를 헤쳐나갈지까지도 숙고해야 한다. 거기에 여야나 보혁(保革)이 따로일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전과 관련해 미국 지지 입장을 표명하면서 국익을 강조하고, 한나라당이 초당적 협조 약속으로 호응하고, 여야가 파병동의안을 신속히 처리키로 합의한 것도 엄중한 현실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미관계의 전환기’라는 노 대통령의 언급 역시 이번 기회에 한동안 소원해진 한미동맹 관계를 복원시키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참전-반전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어떤 측면에선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명분과 논리에만 집착해 당면한 현실과 국익을 외면해선 안 된다. 파당적 이해나 이념적 갈등 때문에 머잖아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단선적(單線的) 선택을 고집해선 더욱 안 된다.
공동체의 생존과 운명이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한 논쟁은 두루 살펴보고 멀리 내다보는 트인 눈과 의견이 달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열린 마음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이라크전은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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