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남로당

  • 입력 2003년 3월 21일 18시 28분


해방정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당이 바로 남조선노동당이다. 줄여서 ‘남로당’으로 불리는 이 정당은 광복 이후 남한에서의 좌익세력을 모아 박헌영이 이끌던 조직이었다. 당시 남로당은 미군정에 반대해 꾸준히 주한미군 철수 운동을 벌였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구성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수립되고 나서 합법적인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지리산 오대산 태백산 등 산으로 숨어들게 됐다. ‘빨치산’ 활동의 시작이었다.

▷6·25전쟁을 전후해 이들 남로당원들이 남한 곳곳에서 벌인 무장투쟁은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수많은 무고한 주민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쌓인 동족간의 증오와 적대감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남로당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들은 박헌영을 비롯해 이승엽 조일명 임화 정태식 이강국 이현상 등이었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북으로 올라간 후 김일성에 의해 총살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김일성의 뒤집어씌우기 수법에 희생된 것이다. 이들 남로당원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소설 ‘남부군’으로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이 최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남로당 간부’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이 밝힌 ‘홍보업무 운영방안’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자리에서다. “이 장관의 행태는 조용하던 사람도 완장을 차고 나면 설치고 돌아다녔던 6·25전쟁 당시 남로당 간부들의 행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이다. 남과 북이 나뉜 지금의 현실에서 ‘남로당’은 여전히 우리에게 ‘빨갱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터라 예민하게 느껴진다. 물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지 ‘남로당’이라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다른 표현으로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지도자의 말에는 무게와 품위가 있어야 한다. 말이 정치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한 정치인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말은 정치인들의 인식 품성 교양 등을 종합적으로 읽게 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야당 의원의 남로당 발언을 포함해 이 장관이 “쓰레기통이나 뒤져서 특종하라”고 한 것이나 청와대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정부 1급 공무원들의 운명을 로또복권에 비유한 말들은 모두 격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입이 요즘처럼 거칠었던 때가 또 있었던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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