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E-폭탄

  • 입력 2003년 3월 22일 18시 07분


전쟁은 과학기술의 정수를 집대성해서 보여주는 쇼윈도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전함과 전차의 무대였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은 폭격기와 항공모함이었다. 1960년대 이후로는 핵과 미사일 등 전략무기가 국력을 재는 척도가 됐다. 그러다가 1991년 걸프전 때 등장한 스마트(smart)폭탄은 전쟁에 대한 기존 관념에 큰 충격을 주었다. 표적을 파괴하기 위해 수백, 수천 발씩 쏟아부어야 했던 ‘물량 위주 전쟁’에서 탈피해 이제는 눈(센서)이 달린 폭탄 한 방으로 깨끗이 목표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족집게 무기가 등장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번 이라크전쟁도 첨단무기의 경연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채용해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스마트폭탄, 미사일을 장착해 공격기로 활용되는 무인항공기(UAV), 적의 송전망을 집중적으로 마비시키는 CBU-94 흑연폭탄…. 그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E-폭탄(전자폭탄)이다. 미국의 후버댐을 24시간 가동해야 만들 수 있는 20억W의 전력으로 반경 330m 안에 있는 적의 전자 신경망을 일거에 붕괴시킨다는 신개념 무기다.

▷E-폭탄의 정식 명칭은 고전력 극초단파(HPM·High Power Microwave)탄. 미사일 탄두에서 방출된 엄청난 전자파 에너지를 전화선과 안테나 등을 통해 적의 지휘통제본부로 흘려보내 전력 및 통신 네트워크와 각종 전자기기 속의 마이크로 칩을 파괴한다는 원리다. E-폭탄은 인명살상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 무차별적으로 적을 공격했던 ‘하드 킬(Hard Kill)’ 시대에서 ‘소프트 킬(Soft Kill)’ 시대로 무기의 체계가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의 의미도 있다. 91년 걸프전 때 미 해군이 시험적으로 발사했다는 E-폭탄은 그러나 아직은 성능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다.

▷‘전쟁의 미래’를 쓴 조지 프리드먼과 같은 전쟁사가들은 스마트폭탄 등 ‘신세대 무기’들이 기존 총력전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번 이라크전쟁이 정보화시대의 첫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 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전쟁 양상을 바꿀 것임을 확신하는 예언들이다. 하지만 미래 전쟁이 어떻게 바뀌든 당분간 그 주역이 미국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수십년 동안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군인들이 가지고 놀 ‘새 장난감’에는 예외 없이 ‘Made in U.S.A’가 붙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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