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전망대]반병희/출자규제 강화 유감

  • 입력 2003년 3월 23일 18시 05분


1960년대 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독립했을 때 두 나라 대통령은 어느 쪽이 더 잘사는 나라가 될지를 놓고 내기를 했다. 자연환경과 부존자원 등 여건으로는 가나가 유리했다. 20년이 흘러 결과는 코트디부아르의 완승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혁에 매달린 가나와 달리 코트디부아르는 경제운용을 철저히 시장에 맡긴 덕택이었다.

얼마 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기업들이 견딜 수 있는 속도와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시장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시장 중심의 경제개혁 구상을 밝혔다.

재계는 반색했다. 몰아치기식 개혁 드라이브에 주눅들었던 재계로서는 대통령의 ‘개혁 속도조절론’과 ‘시장친화론’이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이 재계에 채찍을 들었다.

강 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범위를 확대하고 부채비율 100%를 밑도는 기업에 대해서도 출자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상적 경기변동을 이유로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므로 법을 고쳐서라도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여기서 말꼬리를 잡고 싶지는 않지만 몇 가지 문제는 반드시 짚어야겠다.

1년 전 정부는 법을 고쳐 재무구조 우량기업(부채비율 100% 미만)은 출자총액 규제 대상에서 빼겠다고 했다. 부채비율을 낮추고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는 시장원리에 따른 자유로운 투자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공정위원장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상황이 달라졌다. 재무구조가 우수한 것과 지배구조 개선은 별개라는 것이다. 정부의 약속을 믿고 세계시장에서 ‘제2의 삼성전자’를 꿈꾸며 재무구조를 건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기업들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한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출자규제제도도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후 시장에는 문어발식 경영을 막는 각종 감독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시제도 강화와 지분법 등이 그것이다. 기업들은 출자 내용과 채무보증은 물론 출자회사의 경영 성과까지 분기별 반기별로 낱낱이 공시하고 있다. 시장의 감시와 심판에 알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강제적인 규제 정책과 시장의 자율적인 감시시스템 중 어느 것이 더 시장친화적일까?

이라크전쟁이 끝나도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제가 계속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각종 경제지표들도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을 해야 하는 기업의 신규 투자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래서 묻고 싶다. 하필이면 이런 때 능력 있는 기업의 자발적 투자 의지마저 꺾는 것이 ‘개혁’인가를. 정부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反)시장적인 규제조치들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엇박자를 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반병희 경제부 차장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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