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투자여행]<6>運없는 날은 쉬어가라

  • 입력 2003년 3월 25일 17시 53분


그러나 역시 고수는 달랐다. 줄곧 최악의 시나리오만 늘어놓던 동생은 실제 전투에선 잘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실력이 아니라 운(運)이며 원칙이라 했다. 확률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끝까지 하면 결국 다 잃는 게 도박이다.

돈을 따려면 첫째 운이 있어야 되고, 둘째 그 운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관건이다. 그렇게 잘 버티다가 돈이 좀 쌓이면 그땐 베팅을 키운다. 만일 그렇게 해서 제법 성공하면 더 대담하게 밀어붙인다. 그러다 서서히 끗발이 식는다 싶으면 거기서 만족하고 미련 없이 일어선다. 만일 베팅을 키워 실패하는 경우엔 본전부터 다시 시작한다. 도저히 운이 안 따르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좀 잃고 그만두는 거다.

놀랍게도 동생의 도박원칙은 4년 뒤 나의 스승 키퍼(Keefer)가 가르쳐 준 투자원칙과 일치한다. 한치의 가감도 불필요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똑같다. 그러니 재작년 내 책이 출간됐을 때도 동생은 축하는커녕 이렇게 한마디 툭 던졌다. “형님 책의 글을 보니까 전부 내가 10년 전에 가르쳐 줬던 그거데?”

상대가 상대인 만큼 긴말이 필요 없었다. “그래, 그거나 이거나 원리는 다 똑같데.” 사실 내 무공이 동생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엔 책이 나오고도 1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아무튼 이 얘긴 뒤에 더 하기로 하고….

당시만 해도 콩인지 팥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동생의 그런 원칙은 공허하기만 했다. 확률이고 베팅이고 간에 땄으면 돈이나 좀 보태주지…. 처량한 표정으로 동생 등뒤를 지키고 섰던 난 기어이 몇 푼을 적선받았다. 그리곤 동전 한닢 얻어 눈깔사탕 사러 가는 아이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걸로 몇 분이나 더 버텼을까, 난 이미 멈출 수 없는 내리막을 구르고 있었다. 이 충격, 이 창피, 이 고통, 이젠 어떻게 하나…. 그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으니…. 평소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다가 유사시엔 가장 요긴해지는 사람, 바로 마누라였다. 나는 계수씨와 함께 방에서 애들을 보고 있던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반응은 뻔했다. 그만큼 놀았으면 이제 됐다.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놀자고 온 거 아니냐. 박사 공부한다는 사람이 왜 그리 어리석으냐. 그래, 그게 더 한다고 돈이 따질 일이냐. 나는 먹고 죽으려 해도 돈이 없다. 역시 돈은 힘, 돈이 없었던 난 아무 힘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달리 이를 악물고 저자세를 유지한 덕분으로 겨우 또 몇 푼을 얻어냈다.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cic201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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