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非전문인 낙하산인가 ▼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많은 관심을 끌어온 KBS 사장에 지난 대선 때 자신의 언론고문을 지냈던 전직 언론인 출신 인사를 임명했다. 그간 그를 겨냥해 파다했던 ‘내정설’ 소문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어서 허탈하다. 사장 임명을 둘러싼 ‘외압설’ 시비도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KBS 노조와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KBS 사장 임명은 방송계 안팎의 반대와 우려를 무시하고 낙하산식 구태를 되풀이함으로써 앞으로 전문성과 참신성의 개혁정신으로 출범한 새 정부에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보여 걱정스럽다.
이제까지 방송에 대한 안팎의 비판이 줄어들지 않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필자 나름으로는 무엇보다 사장직으로 대표되는 경영진의 비전문성과 그에 따른 방송철학의 결여를 꼽아왔다. 다음으로는 역대 정부의 입김을 위시해 정치권의 영향으로 점철되어 온 ‘방송의 정치성’을 들 수 있겠다.
역대 주요 공영방송 사장직에 전문방송인을 임명한 사례가 별로 없었고 실무진의 경우 차장 이상이 되면 제작실무를 하지 않는 현실에서 방송은 퇴보를 향한 끊임없는 원점 회귀현상을 보여 왔다. 특히 80년 언론통폐합 과정을 거치면서 KBS MBC 등 공영방송의 경우 속칭 ‘좌청룡 우백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대부분 청와대 대변인을 거친 인사들이 대거 양사 사장으로 임명돼 왔다.
김영삼 정부 들어 그나마 전문방송인을 양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또다시 비방송인으로 되돌아가는 역회귀현상을 보였다. 방송 메커니즘에 생소한 비방송인을 사장으로 임명해 그가 방송의 흐름과 과정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며, 비전문성에서 오는 ‘무지의 비용’은 누가 치러야 하는가. 그 결과는 늘 비전문 경영의 폐해를 지적한 방송사 노조의 자체 경영평가나 시청자의 방송평가를 통해 반(反)공영성의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새 천년을 맞이한 한국사회는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하려 한다. 경쟁력은 바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개혁성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참신성으로 세계를 품에 안아 보자는 것 아니겠는가.
KBS는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의 방송이 아니요, 민영이나 상업방송은 더더구나 아니다. 국민인 시청자가 주인이고, 시청자를 위한 공공성(公共性)을 띤 공영방송인 것이다. 따라서 사장으로는 경영의 경험만이 아닌, 경영의 전문성과 매체에 대한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찾아야 했다. 최선의 선택이 어렵다면 차선, 아니 차차선이라도 분명한 요건은 전문방송인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꼭 지켜져야 했다. 더 이상 방송, 특히 KBS를 정치방송이나 정부의 대변인격으로 격하시킬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범사회적인 공감대다.
마침 새 사장의 임기는 전임 박권상 사장의 잔여임기인 5월22일까지다. 노 대통령은 그때라도 이 같은 방송계 안팎의 여론을 수용해 적절한 인물을 공영방송 KBS의 사장으로 임명해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 정치도구化 말라 ▼
4일 KBS 공사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떠오른다. “방송이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봤다…방송이 가자는 대로 갈 것이다”라고까지 말한 대통령의 방송에 대한 ‘애정’ 표시를 국민이 순수한 시선으로만 보고 있지 않음도 되새겨봐야 한다.
이 정부는 언제까지 단순히 코드만을 앞세우거나 명분만의 인터넷 공개 추천제 등을 내세워 ‘명주는 고사하고 베만 고르는’ 실망감을 국민에게 안겨 줄 것인가.
최창섭 서강대 교수·한국방송비평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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