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권위가 반전성명 내는 곳인가

  • 입력 2003년 3월 26일 19시 08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라크전쟁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반전 성명을 채택한 일이 과연 법률에 규정된 인권위 업무 영역에 속하는 활동인지 의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했고 국회가 파병 동의안 처리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기구가 나서 반전 성명을 발표한 것은 성급했을 뿐더러 그 내용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인권위 성명이 지적한 것처럼 평화와 인권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권위가 성명에서 전쟁 희생자의 인권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반인륜적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저지른 고문과 처형,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소수민족 청소,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유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조는 그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 한정하고 있어 인권위가 미영 연합군과 이라크 사이에 벌어지는 국제 분쟁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인권위는 이라크전 파병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 문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에서 파병되는 비전투 부대는 전쟁이 끝난 후 복구와 인도적 의료지원만 하게 된다.

이라크전쟁은 유엔 안보리의 지지를 받지 못해 많은 나라가 반대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반전 시위에도 대의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기구가 법률에 명시된 업무 영역을 뛰어넘어 이라크전 반대 활동에 참여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다.

한국은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과는 나라의 처지가 다르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 이라크전 뒤에 본격적으로 대두될 북한 핵문제 등을 고려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분쟁에서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국익과 관련된 국제문제나 남북관계에서는 인권위가 정부와 사전 조율을 하고 보조를 맞추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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