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취재와의 전쟁’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52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27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앞두고 재정경제부에서는 강도 높은 ‘보안유지 작전’이 벌어졌다.

한 1급 간부는 몸이 아파 병원에 간 과장과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발표 내용이 한 줄이라도 새 나가서는 안 된다”며 입단속을 했다. 어느 국장은 취재를 위해 찾아간 기자에게 “이번에는 한 번만 봐달라”며 거꾸로 통사정을 했다. 모 과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아예 외출을 해버렸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하나라도 정보를 먼저 알아내려는 기자들과 가급적 보안을 유지하려는 정부 취재원들간의 줄다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앞두고는 취재 기피 강도가 종전과 크게 달랐다.

그 이유는 재경부 고위당국자가 25일 “발표 내용이 사전에 유출되면 감사담당관을 시켜 발설자를 색출하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감사담당관은 26일 조간신문에 이미 보도된 경제정책조정회의에 관한 일부 내용과 관련, 몇몇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캐묻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취재원을 찾아내기 위해 공보관이 아닌 감사담당관이 조사에 나선 것은 어느 경제 부처에서도 드문 일이다.

기자는 이 같은 보안 강도에 비춰 이번 회의에는 사전에 알려지면 국익에 해가 되는 민감한 내용이 들어 있을 것으로 처음에 생각했다. 그러나 짐작은 빗나갔다. 이유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사전에 내용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기자는 최근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기자와 접촉한 공무원이 접촉 사실을 보고토록 한 조치와 관련이 있는지가 궁금해 재경부 고위당국자를 만났다. “이번 소동이 언론에 대한 정부의 최근 분위기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일부 그런 점이 없지 않다”고 대답했다.

관료들은 혹 국민이 대통령보다 먼저 정책 내용의 일부를 아는 일이 벌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국민의 ‘알권리’가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천광암기자 경제부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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