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반추'…"세상과 맞서기 위해…난, 잠시 쉰다"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49분


박이도 시인은 “내 시가 어떤 제한된 틀보다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제공 문학수첩
박이도 시인은 “내 시가 어떤 제한된 틀보다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제공 문학수첩
◇반추/박이도 지음/180쪽 6500원 문학수첩

올해 2월 박이도(朴利道·65·전 경희대 교수) 시인은 23년 교단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인의 정년퇴임을 맞아 제자들은 ‘21세기 문학의 새로운 방향성’(포엠토피아)이라는 논집을, 시인은 시선집 ‘반추’를 정성스레 묶어 냈다.

27일 시인을 만났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그가 마침 서울에 일이 있어 들른 길이었다.

이번 시선집에는 첫 시집 ‘회상의 숲’(1968)부터 ‘민담시집’(2002)까지 모두 10권의 시집에서 시인이 가려 뽑은 89편의 시를 담았다. 자선(自選)하면서 느낀 소회를 묻자 그는 ‘우리말’과 자신의 시 시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초기 시에는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번 선집을 꾸리면서 상당수 시어를 한글로 바꿔 실었어요. 한자와 한글이 함께 낼 수 있는 상승 작용, 즉 의미의 풍요로움을 포기하게 된 것 같아 사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다음으로 ‘민담시집’ 이전까지는 큰 변화가 없는 ‘밋밋한’ 시를 써왔다고 할까요. ‘민담시집’을 통해 서정시의 틀을 조금은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민담시집’을 말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인이 시도한 민담시는 민담 속의 이야기 형식을 빌려 그 속에 살아 숨쉬는 특유의 어법을 재현한 작품. ‘전북민담’에서 장닭을 잡아 털을 뜯다 놓쳐버린 바보 얘기를 구수하게 읊으면서 ‘김동성 사건’에 등장하는 미국 NBC 방송의 제이 레노에게 시인은 한마디 따끔하게 쏘아붙인다.

‘개고기도 못 먹어보고/이만 상했으니 참 안되었소/웃기는 개그하다/바보의 유식(有識)이 되었네’(‘개짖는 소리로 개그한 레노’)

1938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성장기에 절실한 전쟁 체험을 했던 시인은 내면에 움튼 불안을 이제껏 지우지 못했다. ‘민담시집’ 이전까지는 그 불안에 대한 반작용으로 순수 서정시를 통해 자유와 평화, 안온을 추구했다고 시인은 설명했다. “시대에 등돌리고 있었지만 악화일로로 치닫는 세상을 보며 이제는 세상에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인은 시선집의 ‘서문’에서 ‘젊어서 쓴 시는 무의미하며 평생을 기다려 노년기에 몇 줄의 시를 써야 한다’는 릴케의 말을 인용했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추억인 까닭이라는 것이다.

‘민담시집’과 더불어 ‘새(鳥)’를 주제로 한 시집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2000) 등 근작들에서 새로운 시를 시도하기 시작한 시인은 ‘이제부터’라고 다짐하는 듯하다. ‘반추’는 시인이 잠시 쉬어 가는 언덕인 것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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