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길승흠/‘파병’ 北核해법에 활용해야

  • 입력 2003년 3월 30일 18시 44분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에 공병부대와 의무부대를 파견키로 한 것은 어려우면서도 슬기로운 결정이었다.

우선 파병 결정은 우리 국민의 80%가 반대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은 전쟁 명분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내걸었으나 이는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전쟁은 유엔과 대부분의 나라들이 반대하는데도 감행된 데다,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정의에도 위배되는 전쟁이다. 또한 국내적으로 헌법의 평화정신에도 어긋나고 한미방위조약에도 맞지 않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이런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키로 한 것은 일종의 ‘대미 굴복’으로 그가 관철해 온 ‘한미관계의 수평화’ 논리에도 전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더욱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정은 파병을 거부할 경우 우리가 볼 손실을 생각할 때 슬기로운 판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라크전쟁에 대한 반대론 중 한국인을 섬뜩하게 하는 것은 ‘이라크전쟁 이후 한반도 위기는 오고야 만다’는 논리다. 두 가지 논리가 주목된다.

하나는 인종적 이유에 근거한 강원용 평화포럼 이사장의 논리다. 미국의 행태는 이슬람권 전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미국은 이라크전쟁이 인종적 이유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국내 군사전문가들이 밝히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체제 구축 이론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군사 강경파들은 최근 북한의 핵보유 추진이 오히려 그들의 MD 구축에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북-미 대결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파병 요구에 순응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상 두 이론 모두 한국인을 섬뜩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한반도와 같은 지형에서 이라크전쟁 규모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하루 인명 피해가 1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파병과 거부 중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세계적 보편가치, 헌법의 평화정신, 한미방위조약의 내용 등을 고려해 파병을 거부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반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파병요청에 순응해야 하는가.

현 한반도 상황 하에서 한국은 마땅히 후자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파병 결정을 슬기로운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다수가 반대하고, 일본에 이어 호주도 이라크전쟁에 대해 뒤뚱거리는 입장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파병 결정을 내렸다. 이런 한국이 미국은 얼마나 고맙겠는가. 이번 파병은 10여년 전 걸프전 때와도 크게 다르다. 걸프전은 명분이 있는 전쟁이었고 참전국도 많았다. 그래서 한국의 파병에 대한 미국의 감사표시는 미미했다. 이번 파병은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의 감사표시는 적극성을 띨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앞으로 공고해질 한미관계를 북-미관계에 적용시켜 부시 행정부의 대북 태도를 과거 빌 클린턴 정부 수준까지라도 개선시켜 북한 핵위기의 해법에 활용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도 북한의 김정일은 중국의 개방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가. 노 대통령의 이라크전쟁 파병 결정은 이 같은 과실까지 얻어내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길승흠전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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