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민인식도 조사에서 약 60%의 국민은 여전히 부패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도 세계 102개국 중 40위였다. 이것은 아시아 경쟁 국가들에 못 미칠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부끄러운 현주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부방위 대책…문제는 '실천의지’▼
마침 지난달 31일 부패방지대책위원회(부방위)의 업무보고에서 참여정부의 부패방지정책 방향이 발표되었다. 부방위는 국민참여 부패감시체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비리신고자 지위보장 및 면책범위 확대, 보상료 상향 조정 등의 조치와 함께 주민감시 강화 차원에서 주민소환제 도입도 검토할 모양이다. 제도개혁 차원에서 행정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한편 행정감시를 위해 시민참여도 확대시켜 나갈 예정이다.
정치권력형 부패방지를 위해 정당 정치자금제도도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하리라고 한다. 그 밖에도 권력형 비리의 다중 감시체제 구축, 부패행위로 얻은 불법수익의 몰수 추징 강화, 부패공직자에 대한 사법온정주의 지양 등의 내용도 담았다. 그래서 2007년까지 우리나라의 투명성 수준을 현재 일본 수준인 20위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한다.
이러한 청사진은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정권은 변했지만 본질적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공정한 절차를 파괴하는 연고주의적 행태나 특권의식도 척결돼야 할 부패’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나 ‘사익(私益)을 위한 고발이라도 사실에 기초한다면 부패방지의 견제장치로 존중하겠다’고 한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진실로 부패척결의 길을 가려면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문제는 번듯한 이론이 아니라 신념에 찬 실천의지다. 첫째, 권력 상층부와 사회지도층부터 정직하고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부패 관행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국민 앞에 청렴하고 투명하게 봉사하는 공직윤리의 실천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부패척결은 내부의 병인(病因)을 살피고 엄격히 다스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흔히 실패한 개혁은 개혁주체 세력들이 내부의 부패에 민감하게 깨어있지 못한 데서 비롯되곤 했다. 자신의 의식과 권력층 내부부터 다스리는 용기를 보여주지 않고는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셋째, 부패척결은 지속적이고도 철저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정권 초기에는 추상같다가도 세월이 지나면서 용두사미가 되고 마는 전시적 정책구호는 오히려 부패의식을 키우는 역작용만 낳기 때문이다.
넷째, 부패사범에 대한 사후의 사법적 대응도 범죄 억지력을 가질 만큼 엄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패사범에 대한 온정주의가 부패공화국을 만든 꼴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 이 남루한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사정기관간의 다중감시체계나 부패방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민참여적 부패감시감독 강화책도 무용하지는 않겠지만 전방위적 부패감시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시민참여적 부패감시제도는 신중을 요하는 대목이다. 자칫 집권세력의 정치적 풍향에 따라 시민참여적 행태가 건전한 시민문화의 창달이 아닌 정치적 편향성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권력감시 과소평가 안돼 ▼
참여정부도 인사태풍과 함께 출범하고 있다. 연고주의와 서열파괴가 다시금 새로운 연고주의에 의한 친정체제 구축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했으면 한다. 사람이 끌고 가는 개혁은 연고주의에 물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힘들지만 제도와 규범의 틀 속에서 개혁의 물길이 스스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개혁의 제도화와 개혁의 규범화는 사람의 불완전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보완책이다. 또한 언론의 부패감시기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언론이 침묵을 지킨다면 권력의 방자함을 막을 길 없고 부패의 전방위 감시체계 구축은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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