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경제不安 '남 탓' 언제까지

  • 입력 2003년 4월 3일 20시 42분


지난 수요일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들으며 나는 희망과 불안의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우선 희망은 정치분야다.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사당에 대독 총리가 아닌 대통령 자신이 나선 것 자체가 신선했다.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이고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대통령의 기득권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식의 정치개혁 제안은 배후에 깔린 정략적 포석을 감안하더라도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싶다. 국익이 대통령 개인의 신념에 앞선다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확인한 것도 실보다 득이 컸다고 본다.

▼내부 결함 고칠 청사진 안보여 ▼

반면 대통령의 연설 중 아쉬웠던 부분은 파병 논의나 정치 관련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내용이 없었던 경제 분야다. 금융불안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있고, 경제개혁은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원칙과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식의 제안은 다 옳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동안 산발적으로 제시됐던 정책들을 정리해 임기 5년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 청사진을 제시했더라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경제불안을 한미관계와 같은 외부요인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는 것은 새 대통령의 국정연설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매우 방어적으로 들린다. 유가상승과 같은 외적 요인이 경기침체를 심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경제불안은 우리 경제 내부의 결함에서 기인하는 바가 작지 않다. 정치 분야처럼 경제 문제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노무현식 정면돌파의 의지를 보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시장이 불안해하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찬반의 차원이 아니라 정책 자체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제는 하루하루가 전쟁인데 경기대책이건 기업개혁이건 뭔가 신뢰할 만한 정책 복안이 나오지 않으니 소비와 투자는 더욱 움츠러드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한미관계와 같은 경제외적 요인에 대한 불안은 다소 해소했지만 구체적 정책논의의 차원으로 들어서면 오히려 새로운 의문을 낳은 측면도 있다.

과거의 실패사례를 언급하며 단기부양은 피하고 장기적 체질개선에 힘쓰겠다는 내용은 언뜻 타당해 보이지만 해석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제대로 된 경제조언을 받고 있는지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뒷북치듯 돈을 퍼붓는 경기부양도 잘못이지만 필요할 때 도움을 못 주는 정책 부재도 질타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 경제를 잘못 읽어 엉뚱하게 재정긴축을 주장하다 뒤늦게 적자재정으로 돌아선 사안은 국제통화기금(IMF)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정책실패 사례다.

한마디로 단기적 경기문제와 구조적 개혁 어젠다는 구분되는 사안이다. 지난 정부에서 보았듯이 경기부양이냐 구조조정이냐 하는 식의 일차원적 정책마인드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별로 없다. 경제안정이 개혁을 용이하게 하고, 개혁은 다시 안정의 기반을 닦아준다는 식의 적극적 사고가 필요하다.

▼‘안정과 개혁’ 함께 안고 가야 ▼

기업개혁의 경우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은 좋지만 그 청사진은 너무 늦지 않게 제시해야 기업들도 적응해 자발적 구조조정에 힘쓸 것이다. 또한 시장제도가 완벽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시장유인만으로 기업개혁을 기대하기는 힘듦으로 차선책으로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출자총액 제한제도는 경기상황에 따라 변칙적으로 운용되어 일관성도 없고 예외투성이라 투명성도 부족하다. 이런 정책수단을 새 정부가 상속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외규정을 경제여건에 맞게 정리하고 대신 5년 내내 지킬 수 있는 수준의 한도를 설정해 밀고 나가거나, 아니면 차제에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대신 기업의 불법 내부거래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들을 법제화하는 것이 대안일 것이다.

개혁과 안정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안고 가야 할 목표다. 용기와 혜안, 즉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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