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내용을 보면, 김 장관은 복지양분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선진복지국가의 복지행정구조는 단일화 집중화의 길로 나가고 있다. 영국은 보건복지성을 보건성과 복지성으로 나누어 복지성의 위상을 높였고, 일본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복지부에 해당하는 후생성에 노동성을 합쳐 후생노동성으로 통합한 바 있다. 선진국과 반대로 복지부의 업무를 양분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김 장관은 ‘가정여성부’에서 아동 여성 가정 문제를 맡으면 가정해체에 더욱 적극 대응할 수 있고 업무분담 효과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아이디어’ 차원의 주장으로 많은 현실적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복지부는 국민복지를 위한 부처이고 여성부는 여성의 권리증진을 위한 부처이다. 복지부에서는 아동을 주체로 보고 아동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데 반해 여성부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해 아동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본질적 차이에서 많은 문제가 비롯될 것이다.
둘째, 노인도 가정복지의 대상자다. 노인문제는 가정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노인들을 가정으로부터 이탈시키겠다는 비인간적 시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복지욕구는 종합서비스로 해결돼야 한다.
셋째,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중앙정책에 따라 지방정부의 사회복지관계 공무원을 거쳐 지역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이 담당한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복지부와 행정자치부의 지시를 받느라 업무혼란의 문제가 있는데, 이제 여성부까지 등장하면 현장 실무자들의 행정업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넷째, 부처간 업무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아동의 보육문제는 여성부냐 복지부냐를 놓고 부처간 책임 떠넘기기가 나타날 수 있다.
다섯째, 지금까지 아동보육업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할이 바뀌어 왔다. 1980년대부터 아동보육업무는 복지부에서 행정자치부로, 다시 복지부로 갔다가 교육부로, 또 다시 복지부로 돌아갔다. 이제 여성부로 옮겨가도 많은 보육실무자들은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복지부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울러 정책결정은 국민의견을 수렴해 실무자와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관계당국에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참여정부 하에서는 더욱 이러한 절차가 요구된다. 그러나 김 장관의 복지 양분론은 국민은 물론, 실무자들이나 학계에서도 논의된 바 없다. 김 장관은 이 같은 주장을 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밝혀야 한다. 만일 밝힐 수 없다면 이 문제가 더 확대되기 전 업무이관을 취소하고 그간의 혼란을 야기한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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