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채청/옐로 리본

  • 입력 2003년 4월 7일 20시 26분


뉴욕형무소에 수감된 빙고는 고향의 아내에게 ‘혼자 사는 것이 괴로우면 나를 잊으라’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3년반 동안 소식이 끊긴다. 그는 가석방을 앞두고 아내에게 다시 편지를 보낸다. ‘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두라’고. 고향마을이 가까워지자 귀향버스 속 빙고의 얼굴은 굳어졌고, 사연을 들은 승객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갑자기 젊은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성을 질렀다. 차창 밖으로 멀리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인 참나무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수백개의 노란 손수건이 물결치고 있었다.

▷이미 10년 전에 100쇄를 넘긴 ‘노란 손수건’(오천석 엮음, 샘터)에 소개된 실화로, 중년 세대의 젊은 시절을 따뜻하게 적셔준 얘기다. 이를 소재로 한 노래가 1973년에 나온 토니 올란드와 돈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다세요’라는 노래였다. 그 후 노란 리본엔 ‘탕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가족의 사랑이 담기게 됐다. 그것은 하염없는 기다림과 끝없는 용서의 마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한’에도 색깔을 칠한다면 노란색이 어울릴 듯싶다. 미국에서 한때 노란 리본이 청소년 자살방지 캠페인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도 소중한 가족애를 일깨우려는 뜻이었다.

▷노란 리본은 점차 정치적 의미도 갖게 됐다. 때론 ‘피플 파워’를 상징하기도 했고, 때론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상징하기도 했다. 1986년 마르코스 독재를 종식시킬 때 필리핀의 노란 리본 물결엔 민중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1994년 아일랜드를 방문한 미국 대통령 앞에서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게 제게 가장 슬픈 일이었다’고 눈물로 호소한 소녀의 노란 리본엔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전 때 탈레반 정권이 힌두교도들에게 의무적으로 노란 리본을 달도록 한 것은 차별의 표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조집회나 정치행사 때 노란 리본이 등장한 적이 있다. 지난해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노사모는 “노무현 상병을 구하라”며 유세장 주변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이라크전이 한창인 지금 다시 노란 리본이 미국 전역을 덮고 있다. 걸프전 때도 그랬고 코소보전 때도 그랬다. 1994년 북한에 억류된 미군 헬기 조종사의 고향마을은 아예 ‘노란 리본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제 미국에서 노란 리본은 애국심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이 노란 리본이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라크 국민의 눈엔 ‘검은 리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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