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허재 노장투혼 vs 힉스 부상투혼

  • 입력 2003년 4월 10일 17시 55분


#장면1:9일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 국내 프로농구 최고령 허재(38·TG)는 동양과의 챔피언결정 4차전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오른쪽 눈을 비벼댔다. “눈물이 자꾸 흘러나와요.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시력도 전보다 떨어졌고….”

#장면2:역시 9일 치악체육관. 동양 외국인 포워드 마르커스 힉스(25)는 TG와의 4차전 전반이 끝난 뒤 라커룸에 들어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농구화 끈을 풀었다. “왼쪽 발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래도 계속 뛰겠다.”

마흔을 바라보는 허재는 극심한 체력 저하에 노안 초기증세까지 느낀다고 했다. 매 경기를 풀로 소화하고 있는 힉스는 최근 왼쪽 발바닥에 통증을 느껴 절뚝거리며 뛰어다니는 형편.

하지만 허재와 힉스에겐 지금 몸을 사릴 여유가 없다. 정상을 향한 마지막 승부에서 자신을 돌보는 일은 ‘사치’일 뿐이다.

1, 2차전에서 TG의 승리를 이끈 허재는 4차전에서는 챔프전 들어 가장 긴 39분 가까이 뛰며 13개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경기 전 “오늘이 승부의 분수령이 된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보였던 허재는 아쉬운 패배를 뒤로한 채 코트를 떠났다. 진 날에는 몸이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는 그였지만 9일 밤에는 2시간 동안 미팅을 소집, 후배들을 독려했다.

“출발점에서 새로 시작하면 그만입니다. 다시 한번 힘을 합치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습니다.”

출전시간이 10분 이상 늘어나면서 허재는 평소보다 식사량도 늘렸고 매일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어쩌면 우승 헹가래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 TG 전창진 감독은 “곁에서 지켜보면 안쓰럽습니다. 자기 몸 추스르는 것도 힘들텐데 후배까지 일일이 챙기고 있으니…”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양 2연패의 주역을 다짐한 힉스는 챔피언결정전 들어 경기당 평균 38.5분을 뛰며 평균 24.5점, 9.5리바운드, 4.3어시스트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파리채’라는 별명답게 블록슛도 11개나 올리며 상대의 기세를 꺾어놓았다. 발바닥 부상에, 2차전에서는 발목까지 접질려 훈련을 거의 빼먹고 있지만 코트에 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펄펄 난다. 힉스는 “중요한 일전에서 아픈 게 대수냐”며 “훈련 부족으로 슈팅 감각을 찾느라 애를 먹는 게 유일한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동양 김진 감독은 “힉스의 집요한 승부근성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양팀이 2승2패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11일 원주에서 벌어지는 5차전도 허재와 힉스의 투혼에서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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