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 卷二.바람아 불어라

  • 입력 2003년 4월 10일 18시 55분


猛虎出林(1)

뒷날을 두고 보면 유방과 장량은 전혀 닮은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석의 극처럼 서로 다른 것이 오히려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는지 그날 까닭 모르게 끌림을 느끼기는 장량도 유방과 마찬가지였던 듯싶다.

처음 장량에게 유방은 무엇이든 그저 크고 높고 넓기 만한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다. 멀쑥한 키와 살집이 좋은 몸, 넓고 훤한 이마와 높고 콧방울이 넉넉한 코, 그리고 풍성한 수염과 머리칼. 목소리까지도 넓은 동굴에서 우렁우렁 울려나오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다부진 맺힘이나 단단하게 들어찬 속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았다.

유방의 첫 인상이 준 그같은 느낌은 먼저 장량에게 무름이나 모자람, 허약 같은 것으로 읽혀졌다. 이 사람은 뭔가가 실제보다 턱없이 부풀어 올라있다. 용케 버티고 있지만 곧 파탄이 드러나고 허물어져 내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쉽게 남을 방심하게 만드는 인물, 그래서 장량은 잠시 유방을 만만하게 느끼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방과 마주보고 선 그 별로 길지 못한 시간에 이상한 변화가 왔다. 무르고 모자라고 허약해 보이던 것들은 차츰 묘한 기대를 주는 비어있음으로 다가오고, 다시 희미하지만 자신이 그 빈 데를 제대로 채워 넣고 싶은 욕망으로 자랐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참으로 큰 그릇이다. 공을 들이면 천하도 담을 만하다….

그날 장량이 하루 밤 함께 머물자는 유방의 청을 별로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은 아마도 그런 난데없는 욕망과 또 그걸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량이 함께 머물기를 허락하자 유방도 그 숲 속에 군사들을 머무르게 했다. 그리고 군막을 세우기 바쁘게 술자리를 벌이고 장량을 윗자리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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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의 사람 보는 눈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은 그날 밤의 술자리에서 곧 드러났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유방은 언제나 곁에 두고 부리는 노관과 번쾌 뿐만 아니라 소하 조참 주발 하후영같은 부장들까지 모두 자신의 군막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패현에서 건달노릇 하던 시절 저잣거리 술집에서 퍼마시듯 아래위도 없이 함부로 마셔댔는데, 장량에게는 그게 또 묘한 감동을 주었다.

유방과 마찬가지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패거리들도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비상하거나 특출할 것 없는 시골 건달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유방의 사람이 되어 손발로 일할 때는 아무도 그들이 시골 아전이나 저잣거리 주먹, 개백정, 상가(喪家)의 피리장이, 현청의 마부 따위였다고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저마다 눈부신 솜씨를 보였다. 나중에 그들은 한결같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되어 한 시대를 다스리는데, 그 모두가 패현을 중심으로 백리 안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천하의 드넓음에 비하여 말하자면, 하늘은 그때 종지 안보다 좁은 패현 한 곳에 당대의 인재를 그대로 쏟아 부은 셈이 된다.

하지만 하늘의 사사롭게 치우치지 않음을 들어 유방을 둘러싼 인재들을 달리 설명하기도 한다. 그 무렵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던 말로 ‘파리가 준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 길을 간다’ 는 것이 있는데, 이는 대단찮은 인물이 영웅의 비상한 재주와 운세에 곁붙어 출세하게 되는 경우를 이른다. 아마도 유방을 따라 한(漢)나라를 연 패현 건달들을 가리켜 한 말일 테지만, 그들을 준마의 꼬리 붙은 파리로 빗댄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보다는 그 지역과 관련된 무언가가 그들을 격려하고 분발시켜 그들의 잠재력을 한껏 끌어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쩌면 그날 밤 장량이 그 술자리에서 본 것은 바로 그들 패현 건달들에게 격려가 되고 마침내는 비상한 분발을 이끌어낸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말없이 빙글거리며 술잔만 비우고 있는 유방이 그것이었다. 그 무르고 모자라고 허약해 뵈는 인품이, 그저 크고 넓고 높기만 한 텅 비어 있음이, 단순하고 순박한 시골 건달들을 분발시켜 마침내는 천하를 통째로 담게 만든 것이었는데 - 장량은 어렴풋하게나마 그걸 알아보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거기서 받은 감동은 천하의 대세를 읽는 장량의 안목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장량은 이끌고 온 장사 백여 명과 더불어 스스로 유방 앞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어디로 가시고 누구에게 의탁하시든 저희들은 패공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어차피 따로 군세를 이룰 수 없을 바에야 패공 밑에서 싸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장량에게는 망해버린 조국 한(韓)나라 부흥에 걸어온 일생의 비원(悲願)이 아직 살아 있었다. 그게 나머지 장사들과는 다른 단서를 붙이게 했다.

“다만 저는 삼대에 걸쳐 옛 한나라에 은의(恩義)를 빚진 가문의 자손입니다. 한나라를 다시 일으키리라 조상들의 영전에 맹세한 바 있어, 그 한나라가 부르면 저는 언제든 가야합니다. 그때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일이 끝나면 반드시 패공께로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에 묻어나는 진심을 느꼈는지 패공도 기꺼이 그 단서를 허락했다.

“나를 어리석다 버리지 않으시니 그것만으로 감격할 뿐이오. 지금 우리 군에는 구장(구將)자리가 비어있으니 선생께서는 우선 그 자리를 채워 나를 도와주시오.”

그렇게 말하며 장량을 군마(軍馬)나 다스리는 하급 무장으로 삼았으나, 실제 대접은 노관보다 더 우러름을 받는 막빈(幕賓)이었다.

패공이 수천 병마를 이끌고 진현으로 들어가자 영군(寧君)과 진가(秦嘉)가 먼저 나와 반갑게 맞아들였다. 장함 때문에 진군(秦軍)의 기세가 되살아나 군사 한 명 말 한 필이 아쉬울 지경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군과 진가가 임시로 세운 왕[가왕] 경구(景駒)도 몰색없이 패공을 반겼다. 패공에게서 풍읍과 옹치의 이야기를 듣더니 함께 분해하며 소리쳤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르고, 손바닥 뒤집듯 의를 저버리는 자는 죽어 마땅하오. 내 대군을 내줄 터이니 가서 풍읍을 되찾고 그자를 목베도록 하시오!”

하지만 넉넉한 것은 말뿐이었다. 영군과 진가가 나서 진왕의 패잔병들을 긁어모으고는 있어도 그들의 세력은 아직 스스로 지키기가 다급할 지경이었다. 진군(秦軍)이 언제 휩쓸어올지 몰라 불안해하는 판에 패공에게 빌려줄 군사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지금 장함의 부장(副將) 사마니(司馬尼·혹은 司馬인 尼 또는 夷)가 초나라 옛 땅을 다시 평정하고, 상현(相縣)을 되찾은 뒤 탕현(탕縣)에 머무르고 있다 하오. 언제 이 진류(陳留)로 몰려올지 모르니, 앉아서 기다리느니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먼저 그를 찾아 쳐 없애는 게 나을 듯하오. 패공께서는 나와 함께 사마이를 치러 가시지 않겠소?”

동양현 사람 영군이 자신들의 궁한 처지를 에둘러 말한 뒤 패공에게 그렇게 권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가왕 경구 족에서 패공의 군사를 빌려쓰자는 꼴이었다. 하지만 패공에게는 달리 길이 없었다. 옹치와 풍읍을 향한 원한을 잠시 접어두고 영군의 군사들과 함께 사마이를 치러 떠났다.

그때 사마이는 탕현을 떠나 소현(蕭縣)에 진채를 내리고 있었다. 영군과 패공이 자신을 찾아오고 있다는 말을 듣자 그도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와 소현 서쪽에서 기다렸다.

오래잖아 패공과 영군이 군사를 휘몰아 오다가 사마이가 미리 와서 펼쳐둔 진세를 보고 흠칫했다. 그들도 멈춰 진채를 얽으려 하는데 사마이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대로 군사들을 휘몰아 덮쳐오니 이래저래 갈팡질팡하던 패공과 영군의 군사들은 그 매서운 기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몇 십리나 쫓긴 뒤에야 겨우 추격을 벗어났다.

그때 장량은 이미 패공의 사람이 되어 있었으나, 그 싸움에서는 별 힘이 되지 못했다. 워낙 창졸간에 당한 낭패인데다, 직위가 한낱 구장(구將)이라 모사(謀事)에 깊이 관여할 처지가 아니었다. 패공도 그때는 미처 장량을 쓰지 못하고 늘 해오던 대로 군사를 부렸다.

하지만 싸움에 한번 여지없이 지고나자 패공은 비로소 장량이 있음을 떠올렸다. 군사가 수습되기 바쁘게 장량을 군막으로 불러들이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무능한 주제에 남의 장수가 되어 선생에게 부끄러운 꼴만 보였소.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앞일이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실로 막막하구려! ”

장량이 태평스럽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勝敗]은 싸우는 이[兵家]에게는 늘 있는 일[常事]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우선 군사를 유현으로 물리시지요. 그곳에서 며칠 쉬며 군사를 늘인 뒤에 다음 행보(行步)를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에 패공은 영군과 의논하여 군사를 유현으로 물렸다. 유현에서 며칠 군사를 쉬게 하며 새로 장정들을 뽑으니 곧 군세는 사마이에게 크게 지기 전보다 나아졌다.

“우리 군사는 넉넉히 쉬었고 머릿수도 전보다 많아졌소. 때도 봄 2월이라 군사를 부려볼만 하니 어디로 가보는 게 좋겠소?”

어느 날 패공이 다시 장량을 불러놓고 그렇게 물었다. 패공은 속으로 풍읍을 떠올리고 있었으나 장량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탕현을 쳐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탕현은 얼마 전까지도 사마이가 머물던 곳 아니오? 성벽이 높고 두터운데다 군민(軍民)도 소현보다 많은데 무슨 수로 이겨낸단 말이오?”

패공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장량이 방금 탕현을 돌아보고 온 사람처럼 말했다.

“허나 그곳에는 장함에게서 장수로 단련을 받은 사마이도 없고 장초(張楚)를 쳐부수어 사기가 오른 진나라 군사도 없습니다. 있다면 사마이가 새로 뽑아 얽어둔 현군(縣軍)과 현리 (縣吏)뿐일 터이니 탕현을 손에 넣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패공은 이번에도 그런 장량의 말을 따랐다. 그날로 장졸들을 휘몰아 탕현으로 달려갔다.

겉보기에 탕현은 성벽도 높고 지키는 군사도 많았다. 패공이 장량의 말만 믿고 힘껏 들이쳐보았으나 첫날 싸움에는 내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장량의 말이 맞았다. 성을 들이치기 사흘 째, 겉보기에는 한없이 버틸 것 같던 탕현의 성문이 갑자기 열리고 지키던 군사들이 제 장수의 목을 베어들고 항복했다. 사마이가 현민 중에서 새로 뽑아 얽은 군사들이었다.

패공 유방은 그들 중에서 군사로 머물러 싸우기를 바라는 자들은 모두 거두어 들였다. 그 수가 뜻밖으로 많아 패공의 군세는 잠깐 동안에 6천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러자 다시 마음이 급해진 패공은 이내 풍읍으로 밀고 들려 했다. 그때 장량이 다시 말렸다.

“아직은 이릅니다. 제가 패공께 들은 바로 헤아려 보면, 옹치란 자는 장수로서도 범상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처지가 힘을 다하여 지키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설건드렸다가는 이쪽이 상해 저족의 기세만 오려주는 꼴이 나고 맙니다. 우선 가까운 하읍(下邑)부터 손에 넣은 뒤 군세를 보다 가다듬어 풍읍을 치도록 하십시오.”

그 말에 패공은 이를 악물어 급한 마음을 달래고 애꿎은 하읍으로 군사를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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