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이슈를 다루는 데 저널리즘이 신속성과 포괄성을 무기로 한다면, 아카데미즘은 독창성과 전문성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저널리즘이 문제를 빨리 넓게 보되 깊이가 다소 얕다면, 아카데미즘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보되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약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아우르는 아카데미적 저널리즘은 불가능한 것일까. 영국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인 빌 에모트는 바로 이에 도전한다.
이 책은 20세기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21세기의 미래를 예견하고자 한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앨빈 토플러류의 미래학 책들과는 달리 문명과 야만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를 찬찬히 분석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새롭게 전망하려는 데 있다.
저자는 지난 20세기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앞으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오직 두 가지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와 평화다.
21세기에도 과연 자본주의는 자신의 힘을 계속 지속할 것인가가 그 하나라면, 미국은 앞으로도 현재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지배력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가 다른 하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도전받는 평화’를 다루고, 제2부는 인류가 만든 경이로운 제도인 자본주의의 강점과 약점을 주목한다.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면서 저자가 도달한 결론은 명료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균형과 질서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며, 다양한 저항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부의 창출이라는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라는 게 그것이다.
이 책이 갖는 매력은 두 가지다. 첫번째 매력은 과거를 치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하려는 시각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듯이, 저자의 분석대로 우리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매력은 냉정한 현실주의적 시각이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을 현실로 인정할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치밀한 분석과 현실주의적 시각에 기반한 만큼 이 책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평화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세계화가 결국 부의 확대에 기여한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과도한 현실주의가 오히려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점을 저자는 과소평가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21세기에도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은 지속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의 하나를 제시하는 책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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