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08분


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vs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버트 케이건 지음 홍수원 옮김/179쪽 1만원 세종연구원

우리 곤충 마을에서는 장수하늘소가 보안관이다. 그런데 '전과'가 있는 사마귀가 장수하늘소에게 '찍혔다'. 장수하늘소 말로는 사마귀가 다른 곤충들 몰래 독침, 독풀 등을 모아놓고 있다는 거다.

사마귀 집을 뒤져봤지만 별 게 나오지 않았다. 장수하늘소는 사마귀가 나쁜 무기를 어딘가에 꼭꼭 숨겨둔 것이라며 당장 혼내주자고 펄펄 뛴다.

찬성하는 곤충들도 있지만 몇몇은 장수하늘소의 얘기가 못마땅하다. '증거가 없잖아.' 장수하늘소는 '따끔한 맛을 보여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심지어 '너희가 친구 맞냐'며 화를 낸다. 누가 맞는 걸까?

이상은 이 책에 등장하는 '보안관과 무법자' 얘기를 각색한 것이다. 당연히 장수하늘소=보안관=미국, 사마귀=무법자=이라크, 다른 곤충들=술집주인=유럽국가들이다.

★절대선은 없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단일 패권이 확립됐지만 그것이 '영도력'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적이 사라지자 전통의 우방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라크 침공과 관련한 프랑스 독일 등의 '딴 목소리'는 처음으로 미국-유럽의 입장차이가 봉합되지 않은 채 드러난 것일 뿐이다.

미국은 독선에 사로잡혀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반대로 유럽 국가들이 겁쟁이며 이기주의자일까. 외견상 저자는 '편'을 들지 않는다. 서로 처한 입장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곤충들은 예전에도 두 편으로 나뉘어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바람에 한해 수확이며 사냥까지 망쳤다. 힘 좋은 장수하늘소만 탈이 없었다. 그 뒤 곤충들은 말로 푸는 쪽이 손해가 덜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반면 장수하늘소는 처지가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힘이 세다. 그러나 못된 곤충들은 언제든 내 빈틈만 엿보고 있다. 삐딱할 때 일찌감치 혼내줘야 마을의 질서가 유지될 것이다.

★맨손 컴플렉스

미국은 항상 독자적·개입주의적·군사주의적이고, 유럽은 상호주의적·불간섭적·평화적이라고 본다면 중대한 착오다. 양차대전을 시작한 것은 유럽이었고, 미국은 주저하다 전쟁에 빨려들어갔다. 힘의 변화가 입장의 변화를 낳는 것이다.

"숲에서 곰을 만났다고 치자. 당신이 맨손이라면 달아날 것이다. 그렇지만 총을 가지고 있다면 틀림없이 먼저 한방 쏠 것이다."

분쟁지역 개입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다른 데는 양쪽 군(軍)의 작전 개념이 다른데도 이유가 있다. 미국의 전쟁은 다른 대륙에 군대를 투입해 적을 격파하는 것이다. 반면 냉전시대에 유럽의 역할은 소련군을 '몸으로 때워' 막는 것이었다. 희생이 많은 작전에 개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정밀 전자전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이미 코소보 전쟁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병사의 희생은 유권자의 '표'로 연결된다.

★배은망덕한 유럽?

저자는 미국의 전 국무부 고위관료이자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미국 리더십 프로젝트' 책임자. 유럽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배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유럽이 오늘날 연합체를 이루고 평화의 대타협을 이룬 것은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이제 대화로 국가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의식의 진보를 이루었으며, 이를 전파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륙 바깥에서도 '타협정신'이 성과를 이룰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유럽연합의 효율성과 국제연합의 지지부진한 의사결정을 비교해보면 이는 분명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와 질서를 국제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힘'임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힘을 중요시하지 않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힘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유럽은 과거에 자신을 도와준 은인도 알아보지 못한 채 평화의 신기루를 좆는 걸까.

★'외교가를 뒤집어놓은 책'

장수하늘소의 눈 밖에 난 사마귀는 초죽음이 됐다. 숨겨두었다는 '나쁜 물건'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과연 장수하늘소 보안관은 정의를 집행했나? 다른 것을 빼앗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저자는 전쟁의 성격 규정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두 집단의 의견차이가 일어나는 과정에 주목할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이 '반쪽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고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한정된 주제를 충실히 다루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은 워싱턴에서 도쿄까지 각국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더 타임스는 "헌팅턴 '문명의 충돌'·후쿠야마 '역사의 종말'에 필적하는 필독서"라고 평가했다. 원제 'Of Paradise and Power'(2003).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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