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시하라 인기'의 그늘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33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 도쿄(東京)도 지사는 13일 밤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뒤 “앞으로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과격해지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발언에 지지자들은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제 아무리 발언에 거침이 없는 정치인이라도 당선이 확정된 순간만은 형식적으로라도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상례인지라 그의 모습은 분명 파격이었다.

소설가 출신인 이시하라 지사는 일본 우파의 정서를 가장 적확하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정치인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현직 각료가 핵관련 발언으로 곤경에 빠지자 “일본은 핵을 가질 수 있다. 힘내라”며 격려한 게 대표적인 예.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고 우익단체의 역사교과서 개정 운동을 거들었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계 주민을 겨냥한 인종차별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돌출 발언이 나올 때마다 ‘극우파’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런 소동을 겪을수록 인기는 급상승했다.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면서 그 흐름에 편승하는 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온 것이다. 4년 전 30%의 득표율을 올렸던 그는 이번엔 70%의 득표율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시하라 지사를 주목하는 것은 일본의 ‘차기 지도자’ 감으로 유력하기 때문.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퇴진할 경우 후임 1순위로 그의 이름이 거론된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화법, 대중이 원하는 바를 주저 없이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이 인기의 비결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로 여론이 들끓자 민간단체의 대북 쌀 지원에 문제를 제기해 중단시켰고 ‘대북 전쟁불사론’을 펴기도 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유권자들은 이시하라 후보를 찍은 이유로 ‘실천력이 있어서’(41%)와 ‘발언과 행동에 매력이 있어서’(18%)를 꼽았다.

한 정신과 의사는 “나라 안은 불황으로 우울하고, 나라 밖은 불안정한 국제정세로 어수선한 지금 일본인들은 이시하라 지사의 강한 이미지에 기대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여전히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간단명료하게 설파하는 전략이 대중의 정서를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국민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도자의 선택권도 당연히 그 나라 국민에게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근거가 빈약한 우월감에서 시작된 ‘이시하라 돌풍’이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드는 일본 사회의 흐름을 반영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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