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투자여행]<9>이론을 알아야 실패 줄인다

  • 입력 2003년 4월 15일 17시 47분


동생을 천적이라 하는 건 단지 92년 웬도버의 수모 때문만은 아니다. 이후 내가 개과천선(?)한 뒤로도 세상에 유독 그만은 나를 잘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95년 미국 직장에 이어 97년 한국에서 재차 키퍼씨를 초빙하고 비로소 난 눈을 떴다.

천부적인 도박사의 교전수칙, 세계적인 석학들의 가격이론, 전설적인 투자가의 실전전략,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이 셋이 알고 보니 결국 똑같은 얘기가 아닌가. 게다가 나 자신을 포함해 무수한 투자자들의 실패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가.

그래서 외치기 시작한 게 위험관리니 투자클리닉이니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5년을 그렇게 떠들고 다녀도 동생은 인정은커녕 눈도 깜짝 안 했다. 어쩌다 명절에 한번씩 보면 ‘형님아, 투자 그거 조심해서 해라’는 훈수가 고작일 뿐.

그런 그와 10년 만에 다시 카지노를 찾은 것이다. 몇 가지 달라진 점은 이렇다. 첫째, 카지노들도 약아져서 현금은 사절하므로 방은 카드로 잡았다. 둘째, 둘 다 그새 득남을 하여 식솔이 하나씩 늘었고, 셋째로는 시간이 너무 일러 일단 저녁은 전투 후에 먹기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전에 비해 위험관리는 허술해지고 비용요인은 커졌던 것이다.

난 속으로 ‘둘 다 올인 되면 모처럼 나들이 기분 망칠 텐데…’라며 걱정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이 온 두 집 여인네들은 전혀 그런 시나리오는 염두에 없는 듯했다. 마치 ‘카지노는 원래 공돈으로 먹고 자고 놀다 오는 데 아니냐’는 듯 느긋한 표정들이었다. 아마 동생은 이미 쌓인 신용이, 난 각고 십 년에 ‘독사’ 같은 아내를 잠재운 신뢰가 있었던 탓이리라.

우린 300달러씩 실탄을 지급 받아 포화 가득한 전장으로 내려갔다. 엄마와 애들은 안락한 방에서,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저마다 휴식과 산책을 즐겼다. 자리에 앉고 패가 돌기 시작하자 염화시중(拈華示衆),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친척들 모이면 백 원짜리 고스톱이나 쳤지 그런 자리 동석은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각자 천 가지 숨은 뜻이 그 미소 안에 들어 있었으리라.

아무튼 테이블 최저 베팅은 15달러였고, 우린 서로 두어 좌석 떨어져 자릴 잡았다. 식솔들 저녁밥, 또 아침밥, 전체적인 사기(士氣), 그리고 스스로의 자존심…. 지면 너무 많은 걸 잃고, 이기면 그저 당연한, 잘해야 본전인 그걸 왜 기를 쓰고 하는지…. 깊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린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리고 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칩을 만지작거리는 동생 손끝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김지민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cic201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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