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간의 가장 깊은 증오와 갈등은 십자군전쟁에서 비롯됐다. 십자군전쟁은 아랍의 통치하에 있던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위해 서구의 십자군이 아랍을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쟁은 아랍인이나 서구인 모두에게 성전(聖戰)이었다. 1095년에 시작되어 약 200년 이상 지속된 전쟁 기간에 양측의 사망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고 잔인성 또한 극에 달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이다.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세 종교의 성도(聖都)가 투쟁과 살육의 동기를 제공하고 전쟁터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현재도 그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은 인류에게 중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책은 5차에 걸친 십자군전쟁 중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제3차 전쟁(1187∼1192)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치고 있다. 전쟁의 두 영웅인 아랍의 통치자 살라딘과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의 대결을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긴박하게 풀어나가는 저자의 역량이 놀랍다. 미국인인 저자는 십자군전쟁을 이슬람이나 서구, 그 어느 한 쪽의 편향된 시각에서 보지 않고 있다. 그는 양자간의 균형 잡힌 시각을 정립하기 위해 기존의 편견과 통념에 일침을 가하면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보면 아랍인들은 호전적이고 무모하다. 반면에 서구인이 감행한 중세 십자군전쟁은 기독교에 대한 열정이 빚어낸 성전이다. 저자는 십자군 원정을 서구인들이 그들의 잉여 에너지를 성전이라는 명분 아래 외부로 분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 살라딘은 쿠르드족 출신으로 이라크의 티크리트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지성과 관대함, 독실한 신앙심과 예의범절을 갖춘 그는 20대부터 영웅적 기질을 보였으며 37세에는 다마스쿠스와 카이로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다. 당시 이슬람제국의 중앙집권적 체제가 약화되어 아랍이 분열하고 있는 시점에서 리처드 1세의 십자군을 패퇴시키고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아랍인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그는 이슬람 세계의 가장 뛰어난 영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아랍인의 희망의 상징이다.
리처드 1세는 충동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전쟁에서는 용감하고 과감한 지도자였다. 그는 중세의 로맨스, 셰익스피어의 희곡 및 현대 여러 영화의 낭만적 주인공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한편 이 작품에는 이들 두 영웅뿐만 아니라 여러 조연이 등장해 이야기를 다채롭게 하며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첫째, 역사의 연속성을 지적하며 과거의 역사적 사건은 현대의 중요한 사건에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둘째, 성전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종교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이 작품에는 중세 아랍과 서구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 이슬람교와 기독교에 대한 그의 진지한 이해와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또한 정확하고 매끄러운 우리말 번역도 큰 매력이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테러와 이라크전의 영향으로 성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에 체계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또 다른 신간으로는 ‘성전, 문명충돌의 역사’(자크 G 루엘랑 지음·한길사)를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각 종교에서의 성전의 의미와 기원, 그 결과로 발생한 전쟁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이동은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아랍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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