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한 일간지에 사스 의심 환자의 가검물을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분석했더니 모두 사스일 가능성이 높은 ‘양성(陽性)’으로 나왔다는 기사가 소개되자 많은 기자들은 국립보건원측에 왜 이런 사실을 숨겼느냐고 다그쳤다.
이런 일을 보면서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일반인들이 과학 분야의 현상을 보는 시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과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일반인들은 과학의 발전이 매일 매일 토해내는 성과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병원의 진단 부문만 살펴보자.
많은 사람은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은 컴퓨터단층촬영(CT)보다 정확하고, CT는 초음파 검사보다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새로운 장비가 이전 장비보다 유용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도 100% 뛰어난 것은 아니다. 장비마다 장단점이 있다. 게다가 제대로 볼 줄 아는 의사가 없다면 아무리 첨단 장비라도 그야말로 ‘개발에 주석편자’일 따름이다.
많은 의사들은 “오진이 생기는 것은 이런 첨단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의사가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문진(問診)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 비싼 것일수록 더 과학적이라고 보는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도 과학이 신비주의의 영역에 머물러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과학은 두 가지 본질을 갖고 있다. 하나는 사실에 대해 증명이나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통계나 경험을 통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손을 제대로 씻으면 수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두 조건을 다 만족시킨다. 반면 사스를 진단한다는 PCR법은 정확성에 대한 어떠한 증명거리도, 데이터도 없기 때문에 아직 과학의 영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에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과학적 진실은 무수히 많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 않을 뿐이다. 담배를 끊으면 건강에 좋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살을 빼면 몸이 가벼워진다 등등.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런 과학적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과학의 신비’를 찾으려 한다. 아니면 ‘과학’이라는 얘기만 나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린다.
과학의 열매는 곳곳에 열려 있다. 과학적인 생활을 통해 과학의 열매를 달게 따먹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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