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쌔근쌔근 잠이 들자 아내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 여자가 산달에 들어선 것을 한탄하는 것인가 딸의 죽음을 한탄하는 것인가 아마 양쪽 다겠지 작년 여름 나는 겨우 넉 달밖에 살지 못한 딸을 멍석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애장터로 향했다 아내도 임신 5개월의 몸으로 교동 제사고개를 넘었다 귀신이 나오면 던져 쫓아보낼 수 있도록 망태기에 돌을 담아 애장터로 들어갔다 앞이 탁 트인 곳이 좋겠습니다 아내가 말했다 나는 종남산이 보이는 곳에다 딸을 뉘었다 아이구 숨도 못 쉬겠다 좀 꺼내줘야지 아내는 멍석을 풀어내고 조그만 시신에게 바람을 쐬어주었다 머리칼을 쓰다듬고 볼을 비벼대고 손을 꼭 잡고 자옥아! 자옥아! 아이구 내 새끼! 나는 모녀의 손을 떼어놓았다 삽으로 흙을 퍼서 딸의 얼굴을 덮은 것도 나다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산이 돼 버리면 너무나 불쌍하니까네 라면서 아내는 이쪽저쪽 다니다가 커다란 돌을 들고 왔다 뱃속 아이한테 안 좋다고 돌을 들어준다고 하는데도 아내는 갓 생긴 무덤에 돌을 내려놓고 쪽에서 비녀를 빼냈다 전주 이씨 부 이우철 모 지인혜 이자옥지묘 단기4269년 9월6일 몰 아내는 딸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새겨 넣었다 본관 아버지 이름 어머니 이름 그리고 딸의 이름 이자옥 내가 지어준 이름 나는 묘비에 새겨진 글을 읽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읽었다 아이고 이렇게 막막한 데다 이 어린것을 두고 가야 하다니! 조금만 조금만 더 라며 아내는 두 손을 배에 올려놓고 봉분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묻은 아이의 봉분과 내 아이를 잉태한 아내의 배의 곡선이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아내가 만약 나의 생각을 안다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아내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잃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나 아내를 배신했던가 눈을 뜨면 여자가 있었다 옳지 않은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죄를 범하기는 손쉬웠다 아주 아주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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