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진정한 상인의 정신보다 더 널리 퍼져 있는, 그리고 더 널리 퍼져야 할 정신을 알지 못하겠다.” (괴테)
상업과 예술이 걸맞은 짝일까? 이 책은 그렇다고 단언할 뿐 아니라 여러 증거를 들어 이를 재확인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상거래를 위해 발명된 문자는 문학을 실어 나르는 도구가 되었으며, 화가들은 상인들의 여행길과 갖가지 활동을 화폭에 담았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상인들이 전해준 진기한 이국의 이야기들은 숱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부유한 상인과 예술가 사이에 맺어진 후원관계는 명예와 안정된 작업조건을 서로에게 가져다주었다. 수많은 상인의 2세들이 안정된 삶 속에 예술의 달콤한 가치를 맛보며 성장했고, 스스로 예술가가 됐다.
이 책은 인류의 여명기부터 시작된 상거래의 모습과 함께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식량 상인 벽화에서부터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연작에 이르는 상업 관련 예술작품을 소개한다. 관세의 탄생과 정착 등 상거래 제도의 변천뿐 아니라 로마 성립 이전 에트루리아에서 시작되는 이탈리아 명품 구두의 유구한 역사, 16세기 한자동맹 상인들을 골탕 먹인 동구권의 ‘짝퉁’ 제조 등 재미있는 일화도 풍부하게 소개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바꾸어놓은 세계지도와 이 사건이 예술사에 미친 영향도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포르투갈 상인들의 활동이 일본에 기독교풍을 유행시켜 16세기 일본 귀족들이 십자가와 묵주를 걸고 다니기도 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은 아니었다는 증언도 흥미롭다.
1887년 파리에 세워진 백화점 ‘봉 마르셰’는 당대의 예술계 인사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이 건물을 에밀 졸라는 ‘현대의 성전’이라고 불렀다. “숙녀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새하얀 상품들이 펼쳐진 놀라운 광경이었다… 하양의 모든 색상이 대조를 이루고 조화로운 음조를 발했다.”
참신한 소재를 비교적 재미있는 화제를 곁들여 엮었지만, 상거래 자체의 역사와 ‘상거래를 다룬 예술품의 역사’가 뚜렷이 구분되지도, 명확한 형태로 결합되지도 않은 채 모호하게 병렬되는 등 원저 자체의 체제에는 허술함이 엿보여 아쉬움을 준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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