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둔 뒤 미국의 변화는 말뿐이 아니라 이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철수계획을 발표했고 이틀전엔 터키의 마지막 미군시설의 문을 닫았다.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하지만 손꼽히는 우방인 두 나라에서 신속하게 병력을 철수시키는 미국의 결단이 놀랍다. 이런 추세라면 이미 철군 규모와 재배치 계획이 거론되고 있는 독일 주둔 미군과 주한 미군의 변화는 시간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터키와 사우디는 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에 이라크 감시와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를 제공했다. 터키 주둔 미군은 이라크의 북부 비행금지구역을, 사우디 주둔 미군은 남부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했다. 양국 주둔 미군이 수시로 이라크와 충돌하면서 쌓은 실전경험은 이번 이라크 공격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이라크의 패전으로 역할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슬람권의 맹주인 사우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일한 이슬람권 회원국인 터키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사우디와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다. 미군 철수에는 미국을 지원하지 않은데 대한 응징의 성격도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 철수는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세워 중동에 민주화 도미노를 이루겠다는 미국의 전략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한 미군은 과연 어떻게 될까. 노무현 대통령은 TV토론에서 “(미국과)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더라도 주한 미군이 미국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터키와 사우디 주둔 미군은 타국 공격을 위한 발진기지였지만 주한 미군은 바로 이 땅의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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