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떠나는 미군

  • 입력 2003년 5월 2일 18시 34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일 이라크전의 사실상 종전을 선언하면서 미국의 힘을 새롭게 규정했다. 그는 “(과거에는) 군사력이 한 나라를 파괴함으로써 정권을 끝장내는 데 사용됐지만 우리는 이제 위험하고 호전적인 정권을 공격함으로써 한 나라를 해방시킬 수 있는 더욱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영국 BBC방송의 논평을 빌려 부시 대통령의 말을 다음과 같이 고치면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은 불량국가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막기 위한 선제공격 독트린을 처음으로 이라크에 적용했다. 제2의 이라크가 나온다면 미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전투기 조종사 차림으로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도착한 것도 미국의 결연한 의지와 강력한 힘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조작으로 보인다.

▷이라크전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둔 뒤 미국의 변화는 말뿐이 아니라 이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철수계획을 발표했고 이틀전엔 터키의 마지막 미군시설의 문을 닫았다.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하지만 손꼽히는 우방인 두 나라에서 신속하게 병력을 철수시키는 미국의 결단이 놀랍다. 이런 추세라면 이미 철군 규모와 재배치 계획이 거론되고 있는 독일 주둔 미군과 주한 미군의 변화는 시간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터키와 사우디는 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에 이라크 감시와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를 제공했다. 터키 주둔 미군은 이라크의 북부 비행금지구역을, 사우디 주둔 미군은 남부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했다. 양국 주둔 미군이 수시로 이라크와 충돌하면서 쌓은 실전경험은 이번 이라크 공격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 이라크의 패전으로 역할이 크게 줄기는 했지만 미국이 이슬람권의 맹주인 사우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일한 이슬람권 회원국인 터키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사우디와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했다. 미군 철수에는 미국을 지원하지 않은데 대한 응징의 성격도 담겨 있는 것이다. 특히 사우디 철수는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세워 중동에 민주화 도미노를 이루겠다는 미국의 전략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한 미군은 과연 어떻게 될까. 노무현 대통령은 TV토론에서 “(미국과)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더라도 주한 미군이 미국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터키와 사우디 주둔 미군은 타국 공격을 위한 발진기지였지만 주한 미군은 바로 이 땅의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력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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