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상황을 전환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제 부덕의 소치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다고 제 삶을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잖아요. 결국 조용히 자신과 만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서전에는 홀어머니를 따라 월남한 뒤 판잣집을 전전하던 유년시절, 학교 매점에서 일하며 학비를 마련하던 중학시절, 달랑 200달러만 쥐고 건너갔던 미국 유학생활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어머니는 피란살이 속에서도 삯바느질로 그를 가르쳤고, 남편 박준서(朴俊緖·63) 연세대 교수가 7남매의 외아들이었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뜻을 이해하고 살림을 도맡아 줬다. 40년간 평등 부부로 살아온 남편은 유학시절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 줬다. 그가 남편과 함께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힘이 컸다. 정작 박 교수는 아내가 자신의 책상을 갖는 데에만 49년의 세월이 걸린 점을 지금도 미안해한다.
이들 부부는 청문회의 기억들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저희를 향한 손가락질 뒤에는 사회지도층을 모두 부패와 부정의 표상으로 보려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손실이니 하루빨리 치유돼야죠.”
장 전 총장은 10일 미국 셰넌도어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23일에는 모교인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남편과 함께 ‘학교를 빛낸 동창인상’을 받는다. 한국인으로는 고 한경직(韓景職) 목사 이후 두 번째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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