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기사는 현장감이 생명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하는 말, 현장 분위기 묘사 등은 기사의 생동감을 높여준다. 기자들은 코멘트를 받고 스케치를 하기 위해 시간을 다투어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사건 현장에 도착하더라도 목격자 또는 피해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다보면 작문의 유혹에 빠져든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문이라는 뉴욕 타임스에서 제이슨 블레어 기자(27)가 작문기사를 일삼고 다른 신문에 난 기사를 마구 베끼다가 들켜 뉴욕 타임스가 ‘152년 만의 대치욕’을 겪고 있다.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뉴욕 타임스에서 보수 논객으로 꼽히는 윌리엄 사파이어의 ‘대치욕’이라는 칼럼이 인상적이다. 사파이어는 ‘권위 있는 뉴욕 타임스, 정확성의 세계적인 전형, 기록의 신문, 어떤 언론보다 퓰리처상을 많이 받은 신문이 수년 동안 교활한 친구에 의해 속임을 당했다’고 썼다. ‘나는 30년 동안 뉴욕 타임스에서 일하며 국방 문제에서 비둘기 파, 경제 문제에서 좌파적인 사설에 동의하지 않을 때마다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보수 논객에도 공평한 지면을 할애했다. 기사가 좌파 편향으로 흐를 때는 보수주의자들이 안팎에서 소리를 내 뉴스가 바로잡혔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 사람들은 부도덕한 이번 보도 행위에 더욱 분노한다.’
▷시공간의 제약에 쫓기다보면 신문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스스로 공개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하기란 쉽지 않다. 뉴욕 타임스 온라인 판에는 힘들여 발품을 파는 대신 쉽게 작문을 했던 블레어 기자의 기사에 대한 조사 내용이 상세하게 올라와 있다. ‘자기점검은 건강해지는 길이고 자기수정은 승리자가 되는 길이지만 자기도취는 확실한 패자가 되는 법’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강조한다. 한국 언론도 뉴욕 타임스의 치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구독 23
구독
구독 799
댓글 0